“여보, 국회가 언제 국민의 것이었던 적이 있었어? 국회를 돌려드린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을까?”
원고가 거의 완성돼가던 지난 1월, 윤재관(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씨의 아내는 <국회를 돌려드립니다>라는 책 제목에 이렇게 반응했다. “믿어줄 국민이 없으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얘기”였지만 윤씨는 “국회와 국민의 거리가 단 1미터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으로” 탈고를 마쳤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는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자신의 대표를 국회에 보내놓고 “매일 쌈박질만 하는 곳”이라며 혐오한다. 17년 전 인턴 보좌관을 시작으로 박병석 의원 비서관, 김영주 의원, 장병완 의원실 보좌관을 거친 윤씨는 “논쟁이 없고 논란이 없는 국회가 좋은 것일까?”라고 정면으로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그건 담합일 뿐이다.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국민들은 자신을 대표해서 잘 싸워주는 국회의원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는 책의 부제를 ‘빽없는 국민을 위한 국회사용설명서’라고 달았다. 잘 싸울 수 있도록 국회를 적극적으로 써먹어달라는 게 그의 메시지다. “비난받는 국회가 정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는 국회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며 그는 국민을 위해 싸워온 여러 사례를 책에 담았다.
그래서 책에는 ‘어? 국회가 이런 일도 해?’라며 놀랄 만한 일들이 담겼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몸을 의탁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적지않은 쉼터가 아파트에서 ‘그룹홈’ 형태로 운영된다. 이런 사회복지시설은 전기세의 20%를 감면받을 수 있으나 혜택을 받으려면 한전에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신청을 해야 하는 게 문제였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혹여 생길지 모르는 아파트 주민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쉼터를 비공개로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쉼터가 공개되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기에 쉼터는 전기세 감면을 포기해야 했다.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센터장은 한전과 시청, 여성가족부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답만 듣고 결국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 윤씨는 이런 고충을 듣고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여성가족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국회 산업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보좌관들에게 자료를 전달하며 문제점을 알렸다. 언론에도 제보해 기사화시켰다. 6개월 간의 ‘작업’ 끝에 비로소 한전이 움직였다. 쉼터의 존재를 지자체가 확인해주면 전기세를 우선 납부한 뒤 쉼터 계좌로 감면액을 돌려주는 식으로 방법을 바꾼 것이다.
지역구에 들어설 골프연습장 공사 계획을 무산시킨 것도 주민들을 대신해 싸워준 결과였다. 지역구 아파트 옆 공터에 골프연습장이 들어설 것 같은데 그걸 막아달라는 ‘민원’이 국회의원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접수됐다. 사유지였기 때문에 그곳에 골프연습장을 세우는 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윤씨는 소음 피해를 검증해보기로 했다. 이미 영업 중인 비슷한 크기의 골프연습장을 찾아가, 골프연습장 부지와 아파트 단지의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소음을 측정했다. 주간 소음 기준인 65데시벨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측정해보니 야간 소음 기준인 55데시벨을 훌쩍 넘겼다. 자료를 구청에 제출하자 구청은 골프연습장 건설 허가를 반려했다.
공공기관이 ‘규정’을 따질 때 국회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윤씨는 “취직이나 아들 군대 빼달라는 부탁”을 빼고는 “지역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성심성의껏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조리를 바로잡고 싶을 때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게 국회다. 윤씨가 말하는, 국회를 잘 써먹을 수 있는 ‘꿀팁’과 ‘상식’을 정리했다.
1.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법과 제도는 현실을 뒤쫓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허점을 보일 때도 있다. 또한 관(官)은 현재의 법과 규정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융통성 있는 집행을 주저할 수 있다. 관에서 말이 안 통한다고 억울함을 쌓아두지 말고 국회 문을 두드려보라.
연줄보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부탁인지 많은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일인지, 사회적 구조적 모순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의원 사무실에 전화부터 하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지역 민원이 있을 때 굳이 여의도까지 찾아올 필요 없다. 지역구의 의원 사무실에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된다.
2. 익명 제보를 원한다면 일반우편을
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비리 제보를 하고 싶다면 발신인 없이 국회로 일반우편물을 보내는 방법이 최선이다. 국회가 갖고 있는 자료요구권과 관련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익명 제보 내용의 진위를 밝혀낼 수 있다.
3. 최적기는 국정감사 1~2개월 전
부조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싶다면 국감 한두 달 전에 국회를 찾아가라. 이때가 가장 효과적이다. 정부가 국회의 얘기를 경청하는 시기가 그때다. 국감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제도적인 허점, 억울한 일을 당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 공직사회 비리 등 정보에 가장 목마른 시기라는 것이다. 국감이 끝나면 국회는 예산과 법안심의에 집중하기 때문에 제보에 집중하기 어렵다.
4. 예산이 필요하면 봄부터
각 부처별로 다음 연도에 어떤 사업을 펼칠지 계획을 세우고 예산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때가 4월이다. 6월까지 부처별로 예산을 확정해 기획재정부에 요청하게 된다.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라면, 정부가 예산안을 마련할 때인 늦은 봄부터 국회와 상의하면 효과적이다.
5. 법안심사소위 위원이 법률 통과의 ‘키맨’
제·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해당 상임위에 배정된다.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토론이 이뤄지고 법안 심사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6~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간다. 법안심사소위는 담당 공무원을 출석시켜 의견을 청취한 뒤 의결하게 된다. 이렇게 통과된 법안은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법안심사소위 통과가 법률 제·개정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다.
법률 제·개정에 있어 국회는 토끼이고 정부는 거북이다.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하려면 주무부처의 입안, 다른 행정기관과의 조정, 입법예고를 통한 여론 수렴,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라는 7단계를 거쳐야 한다. 반면 국회의원은 동료의원 10명의 공동발의자 동의만 받으면 된다. 그래서 입법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법률안은 정부 부처에서 만들고 여당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하는 ‘청부입법’이 이뤄지기도 한다.
6. 국회의원의 전공을 파악하고 동지로 만들자
평소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시장에 관심이 많은 의원에게는 영화시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주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면 그 의원의 의정활동을 돕는 일이다. 그렇게 동지가 된다. 또 정책토론회를 제안해 공동 개최하는 것도 동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정책토론회를 지원하는 예산도 있다. 좋은 주제로 토론회를 제안하는 단체가 있다면 국회의원으로서도 ‘땡큐’다.
의정보고서를 통해서도 그 의원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관련 분야에 대한 내 불편사항을 요구해보자. 즉각 반응할 것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