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참패 야당이 제1당, 더민주 '미스터리'
[4.13 총선평가①] 지역구도에서 세대구도로... '2040세대'가 결과 바꿨다
2016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으로부터 제1당의 지위를 가져온 것도 충격적이고, 국민의당이 더민주로부터 호남 맹주의 지위를 가져간 것도 그렇다. 이런 선거결과는 이전의 어떤 선거에서도 볼 수 없었다.
가장 의아스러운 대목은 더민주가 지금까지 민주진영의 최대기반이었던 호남의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어떻게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보다 5석을 더 얻어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호남의 완전한 지지가 없이도 더민주를 원내 제 1정당으로 만들었을까.
더민주 승리의 원동력은 2040세대의 간절함
▲ 김종인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1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말했다. | |
ⓒ 남소연 |
그 힘은 바로 20대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세대가 보여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 의지였다.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더민주를 이번 총선에서 승리토록 한 원동력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더민주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 그리고 대구에서마저 1석을 얻을 수 있던 것도 결국은 2040세대의 힘이었다. 부산, 경남, 대구, 울산, 강원에서 더민주와 무소속이 당선된 지역은 모두 젊은 세대 비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세대 구도가 지역 구도를 능가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2040세대는 문재인을 지지했고, 5060세대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예외 지역 두 곳이 있었다. 호남과 대구·경북이 그곳이었다.
호남은 모든 세대가 문재인을 지지했고, 대구·경북은 모든 세대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2012년 당시 출구조사에 따르면, 호남은 2040세대(90~95%)는 물론 50대(90%)와 60대(85%)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대구경북은 50대(90%), 60대(95%)는 물론 2040세대에서도 70%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호남과 대구·경북에서도 세대균열이 발생했음을 보여줬다. 호남에서 2040세대는 더민주를 지지했고, 5060세대는 국민의당을 지지했다. 대구·경북에서도 5060세대는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2040세대는 더민주와 무소속을 지지했다. 이제 한국정치에서 세대구도가 주요 균열이 되었고, 지역구도는 부차적인 균열로 밀려났음을 알 수 있다.
2040세대가 야당을 지지하고, 60대 이상 세대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일관된 흐름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그 이후 보궐선거와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패했던 야권이 이번에 극적인 승리를 하게 된 다른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크기'였다. 이전에 기고한 기사(현실화된 야권 궤멸, 이제는 간절함에 달렸다)에서 더민주 지지자들과 2040세대 유권자들의 적극적 투표 의지가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간절함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간절함이 크면 그것은 확산되고 전염된다. 그 힘으로 역사는 만들어졌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기본원리는 간절함이 큰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총선 전 여론조사는 더민주 지지자들과 2040세대의 적극적 투표 의지를 보여줬다. 예를 들면, 리얼미터가 3월 28~30일 조사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참조)에서 정당별 적극적 투표의향 비율(평균 56.9%)은 ▲더민주 76.8% ▲정의당 63.3% ▲새누리당 51.9% ▲국민의당 49.6% 순이었다.
▲ 19대 총선과 20대 총선 세대별 투표율 비교. | |
ⓒ 유창오 |
이런 2040세대의 적극적 정치참여, 그들의 간절함이 더민주가 호남의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원내 제1당이 되는 총선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역구도의 '87년 체제' → 세대구도의 '16년 체제'
▲ 고개숙인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20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 |
ⓒ 남소연 |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단순한 일회성이 아닐 수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 선거 승리를 이끌어 온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선언하는 동시에 1987년 이후 한국정치의 중심균열이었던 지역구도가 극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2011년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 책에서 1987년 총선 이후 반복되는 선거구도인 지역구도가 점차 세대구도로 변화되고 있고, 조만간 세대구도가 지역 구도를 능가하는 선거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2012년 대통령선거가 그런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제20대 총선에서 그 예측이 맞았다. 이것이 갖는 현실적 의미는 앞으로 2040세대가 한국 정치의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적 리더십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이들에게 있다는 것을 이번 총선결과는 보여줬다.
지난 시기 호남을 빼고 민주 진보 진영을 생각할 수 없었듯이, 지금은 노무현을 빼고 민주 진보 진영을 생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였던 시절에는 정권교체의 가장 큰 힘이 호남 유권자들의 간절함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듯이, 2017년의 정권교체 힘은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2040세대의 간절함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호남 패러독스'
'문재인 필패론'은 허구였다
[총선평가②] 더민주, 제1당 승리는 호남의 국민의당 선택 명분 없애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 후 호남 사람들의 마음은 꽤 오랫동안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후보에게 패하고, 정계를 은퇴한 후 영국으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서쪽 하늘만 보면 저 너머에 김대중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괜히 서러웠다고 했다.
이번 총선을 전후하여 나는 호남 사람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특히 총선 결과에 대한 당혹감이 컸다. 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있던 '문재인 비토론'이 그야말로 여실히 현실로 드러났는데, 그것이 너무도 민망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민망함이 1992년 대선 이후의 서러움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호남 출신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관련되어 18년 세월을 일해 오다가 보니, 호남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한다. 내 처가가 광주인 것도 호남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광주 출신인 것을 삶의 큰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그것이 이번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총선 직후 호남에서 더민주 지지율 상승, 국민의당 지지율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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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28석 중에서 23석(더민주 3석, 새누리당 2석)을 가져갔다. 의석수만으로는 국민의당의 압승이지만 지역구 득표율은 더민주 37%, 국민의당 46%로 9%p 차이(광주 34%-56%, 전북 39%-42%, 전남 38%-44%)였다. 호남맹주의 자리를 국민의당이 더민주로부터 뺏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호남에서 더민주의 위상은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 결과는 대체로 40대 이상은 국민의당을, 40대 이하는 더민주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출향한 호남 사람들, 특히 50대 이상은 다수가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호남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이 20%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강남과 분당에서도 더민주 후보가 당선된 이번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이나 경기도 안산처럼 호남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흔히 야당의 텃밭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오히려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총선 직후 독특한 여론조사가 발표되었다. 알앤서치가 총선 다음날인 14일 조사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호남에서 승리한 국민의당은 호남 지지율이 4%p가 하락해서 43%에 그친 반면, 호남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은 15%p나 급등해서 39%를 기록하여 국민의당의 턱밑까지 추격했다는 것이다.
아직 하나의 여론조사 결과이므로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호남 민심의 복잡함, 선거 이후의 민망한 마음을 보여주는 조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선거가 다 끝난 후 여론의 반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 정치 특히 야권에서 호남의 비중을 생각할 때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아직 호남의 선택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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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개표결과 | |
ⓒ 고정미 |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호남은 왜 더민주를 버리고 국민의당을 지지했을까? 그것은 '문재인 비토' 감정 때문이었다. 바로 그 '문재인 비토' 감정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박근혜 심판'이 선거 쟁점이었을 때, 오로지 호남에서만 '문재인 심판'이 선거 쟁점이었다. 그리고 선거 결과도 다른 모든 지역은 박근혜 대통령을 심판했는데 반해 오로지 호남만이 문재인 전 대표를 심판한 것이다.
내가 들은 호남에서의 '문재인 비토론'은 그 정도가 심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옮겨가서 이번에 당선된 호남의 기득권 국회의원들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고 증폭된 것들이었다(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그것은 한마디로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이었다.
그런데 호남의 '문재인 비토론'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속내는 앞에서 지적한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과 같은 정서적인 것이었던 반면, 겉으로 주장되는 명분은 다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재인 필패론'이었다. 즉,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절대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이라는 주장이 '문재인 비토론'의 명분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필패론'의 논리를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은 지난 대선 직후 더민주 대선평가위원장으로 대선 평가를 주도하고, 이후 국민의당 창당위원장으로 활동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다.
그는 대선 평가에서 "18대 대선 패배로부터 민주당이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노무현과의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노무현·친노·문재인과의 이별' 없이는 대선 승리도 없다며, "어차피 이번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더민주)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며 국민의당 창당을 주창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문재인 필패론'이 허구였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절대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는 주장과 달리 더민주는 지역구에서 새누리당보다 5석 더 많이 당선되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 대구에서도 1석이 당선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호남 없이도 그런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호남 패러독스', '호남의 역설'이다.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정권 교체도 선거 승리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조하여 이번 총선에서 호남이 몇 십 년동안 지지해온 더불어민주당을 버리고 국민의당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총선 결과로 드러난 사실은 '문재인 필패론'이 아니라 거꾸로 호남 없이도 선거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호남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호남방문 2일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전북대 앞에서 김윤덕(전주갑), 최형재(전주을), 김성주(전주병) 후보 지원 유세를 마치고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
ⓒ 이희훈 |
이처럼 이번 총선 결과는 지금까지 국민의당이 주장한 창당의 명분, 호남의 일부가 주장한 '문재인 필패론'의 명분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이번 총선 결과는 더 이상 호남이 민주진영의 대주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번 총선 결과는 전국의 2040세대가 민주진영의 대주주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20대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세대가 보여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의 힘, 더는 민주주의 후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 원동력이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호남이 문재인과 더민주를 비토하면 몰락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호남은 이번에 문재인과 더민주를 한 번 혼내주려고 다른 선택을 했는데, 그 결과 놀라운 진실을 보고 만 것이다. 호남이 더는 민주 진영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잘못된 선택을 통해 확인하고 만 것이다.
호남의 잘못된 선택은 결국은 스스로 민주진영의 중심 지위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호남은 문재인에 대한 서운함, 왜곡되고 조작된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지금까지 지켜온 민주주의의 수호자, 민주진영의 중심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지경에 오고 말았다.
이제 호남의 낡은 정치인들이 자기들이 살아남으려고 만들어낸 허상의 '문재인 비토론', '문재인 필패론',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이 가져온 민망한 결과를 호남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눈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그것은 전국으로부터 고립되었으면서도 홀로 민주주의를 지켰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수호자, 그 존경받던 호남의 모습이 더는 아니다.
그런 모습에 지금 호남 사람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내가 주변에서 듣는 목소리도 그렇고,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한마디로 호남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호남의 선택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호남의 이런 당혹감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호남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존경받아왔던 그 역사성을 복원할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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