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5대그룹을 만나 “기업 자발적 개혁을 분발해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일 오전 10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5대그룹 전문 경영인들과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정책간담회에는 이상훈 삼성 사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박정호 SK 사장, 하현회 LG 사장, 황각규 롯데 사장,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그간 5대그룹의 자발적 개혁을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기업의 자발적 개혁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는 우려를 전하고 “분발해달라”고 당부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5대그룹 전문경영인들은 “국민 눈높이에 비춰볼 때 미흡한 부분 있지만 과거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고 잘하는 부분은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업집단국이 기업 조사·제재 뿐만 아니라 기업관련 정보 축적을 통해 기업정책 법·제도를 개선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위원장은 기업인들에게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Corporate Governance Code)을 갖추고 하도급거래 공정화를 위해 노력해달라”, “노사정 관계에서 5대그룹이 적극 역할해달라”고 주문했다.
아래는 김 위원장의 모두발언 전문.
지난 6월 23일 첫 만남 이후 4개월여가 훌쩍 지났습니다. 반갑습니다. 특히 지난번에는 롯데그룹 경영자를 뵙지 못해서 아쉽고 죄송했는데, 이번에 같이 만날 수 있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지난 6월 간담회에서 제가 여러 가지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특히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기다리겠다, 그렇지만 한국경제에 남겨진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서둘러주셨으면 좋겠다.”는 점을 강조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처한 환경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경영 환경이 나쁠 뿐 아니라 참으로 불확실합니다. 불확실성이 기업인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 기업인들이 불철주야 노력하셔서 개별기업 차원에서나 국민경제 전체 차원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기록해주신 점,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아가 개별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과 노동자에게까지 확산되도록 하는 상생협력의 노력을 기울여주신 것에 대해 무엇보다 감사의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7월 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친 청와대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 상생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 협력업체, 특히 영세한 2차 3차 협력업체로까지 확산되고, 그 기업들에 고용되어 있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여기 계신 5대 그룹에서 선도적으로여러 상생협력 방안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기업의 자발적 상생협력 노력,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5대 그룹의 선도적 노력이야말로 예측가능하면서 지속가능한 개혁 성과를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방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생각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업들의 노력에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또한 지난 선거과정에서 국민께 약속한 공약에 비추어볼 때,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정부는 지난 선거과정에서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전횡방지 및 소유ㆍ지배구조 개선을 국민께 공약으로 약속드렸고 새정부 출범후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국정과제를 제시하면서 4가지 목표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이미 재계에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① 총수일가의 전횡방지 및 투명하고 건전한경영문화 확립, ②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및 부당한 경영권 승계 차단, ③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 ④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배력 강화 방지 등 금산분리 원칙 준수가 그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새정부의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 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변화의 의지와 노력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과 비판은 변화의 과도기 동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전략이 시장과 사회의 반응으로부터 지나치게 괴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좀 더 분발하여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국민이 기업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밀한 전략을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지난 간담회에서 제가 말씀드린 부분에 대해 각 그룹에서 준비를 하셨다고 하니, 그에 관해서는 바로 후에 진행될 간담회에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정책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예측가능성의 확보일 것입니다. 특히 공정위가 담당하고 있는 기업정책의 경우에는 예측가능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난 6월에 첫 간담회를 가졌을 때 “몰아치듯이 기업개혁을 하지는 않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제가 언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올 12월 말을 제 인내심의 1차 데드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상충할 수 있는 저의 이 두 발언을 놓고 기업 측에서는 혼란을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고 말입니다. 더구나 언론에서 ‘재벌 저승사자’라고 지칭한 기업집단국이 신설?출범하면서 기업들의 우려는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이러한 기업 측 우려에 대해 제가 좀 더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기업집단국의 역할’입니다. 기업집단국은 대기업들을 조사·제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은 아닙니다.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선, 기업집단국은 공시정보나 서면실태조사, 사건처리 등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유의미한 정보로 DB화하는 작업을 기본으로 합니다. 정확한 정보에 기초할 때에만이 적확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미시적 기업정보를 축적한 기관으로 성장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한편, 그러한 기업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상징후를 조기 포착하여 직권 기획조사를 시행하고, 법 위반행위를 확인했을 때 엄중 제재하는 것이 물론 기업집단국의 본연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보 축적과 조사·제재 과정의 결과로서 우리나라의 기업정책에 대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이러한 기업집단국의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정치적 또는 정서적 요구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시장질서와 효율적인 기업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의 생각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따라서 너무 불안해하지는 마십시오. 준법경영과 상생협력을 실천하시면 걱정하실 일이 없습니다.
둘째, ‘12월 말 1차 데드라인’의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기업들이 자발적 개혁의 의지를 국민께 보여드릴 시간적 여유를 가지셔야 한다는 것과, 12월 정기국회에서의 개혁입법 진행상황을 반영하여 공정위의 기업개혁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것, 이 두 가지가 12월 말 데드라인의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했던 공정위의 속사정도 있었습니다.
기업집단국과 디지털조사분석과의 신설로 공정위 직원이 정원 기준으로 60명 늘어났다는 것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그건 정원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시점까지 현원, 즉 실제로 공정위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는 단 한 명도 늘지 않습니다. 공무원 숫자 늘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반면에 하도급, 가맹, 유통, 대리점 등 이른바 갑을관계 문제가 심각한 영역에서 민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지난 4개월여 동안 공정위는 윗돌 빼서 아랫돌 메우는 식으로 일해 왔습니다.
공정위 직원들은 거의 과로사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내부승진, 타부처 전입, 신규 채용 등의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올 12월 중순 경이 되어야 비로소 공정위 전체 조직이 정상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가동되는 상황이 됩니다. 제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12월 1차 데드라인 설정의 속사정입니다.
셋째, 예측가능성 부여라는 측면에서 공정위, 특히 기업집단국이 뭘 할거냐에 대해 두 가지 정도 예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의 운영 실태를 전수조사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공익재단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과연 공익재단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의결권 제한 등의 제도 개선방안을 강구할 생각입니다. 또한, 지주회사의 수익구조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할 계획입니다.
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의 배당금이 주된 수입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브랜드 로열티, 컨설팅 수수료, 심지어 건물 임대료 등의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익구조가 지주회사 제도 도입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그 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등의 문제는 없는지, 나아가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인지 등에 대해 살펴볼 계획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기업집단국의 업무계획 일부를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기업 측에서도 공익재단이나 지주회사 수익구조 그리고 각 그룹의 특수한 이슈들을 미리미리 점검해보시고, 선제적으로 위험요소들을 관리하실 것을 당부 드리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기타의 당부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공정위 소관업무가 아닐 수도 있고, 또 법으로 강제할 성질의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당부 사항이기도 합니다. 네 가지입니다. 첫째, 최근에 공정위가 속칭 로비스트 규정이라는 걸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셨을 겁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입니다.
공정위를 접촉하는 대형로펌 변호사들, 대기업집단의 대관업무 담당 임직원들, 그리고 이들 민간회사에 취업한 공정위 OB들을 사전등록 대상자로 지정하고, 접촉 시 외부인들에게는 윤리준칙 준수의무를, 내부자들에게는 사후보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입니다. 기업에 계신 분들이 공정위 직원들을 아예 접촉하지 말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시장의 경제주체들을 만나지 않고서 어떻게 공정위가 시장감독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접촉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의무 위반 여부를 사후적으로 확인·징계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여기 계신 5대 그룹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관리대상일 겁니다. 내부 대관 담당 임직원들, 그리고 법률대리인들에게 공정위 로비스트 규정의 취지를 잘 전달하시고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하심으로써 공정위와 기업들이 모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선순환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기업 지배구조 관련 사항입니다. Stewardship Code, 즉 기관투자자들의 주주권 행사 모범규준에 대해서도 잘 아실 겁니다. 기관투자자들이 1년에 한번 정기주총 때 의결권을 행사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피투자기업의 경영진과 대화함으로써 문제를 조기에 포착하고, 해결책을 공동 모색하며 실행하자는 것이 Stewardship Code의 취지입니다.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이 주주권 행사 모범규준을 시행한다면, 피투자기업들도 이에 상응하는 지배구조 관련 모범규준을 갖추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즉 Corporate Governance Code가
이미 도입되어 있습니다. Stewardship Code가 도입된 ‘15년 말에 Corporate Governance Code가 보다 진전된 형태로 개정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기업들도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외부주주들을 귀찮거나 위협적인 존재로만 인식하지 마시고, 사외이사 선임 등의 주요 현안에 대해 평상시에 기관투자자들과 대화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Korea Discount를 해소하며, 궁극적으로 우호주주군을 형성하여
경영을 안정화시키는 길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셋째, 하도급거래의 공정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입니다. 과거에도 대통령과 대기업이 만나서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근절하자는 다짐을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위에서 아무리 공정거래를 강조하더라도, 실제 구매부서 실무 임직원들의 인센티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즉 구매단가를 후려치거나 심지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해서라도 기업의 이익증대에 기여한 것을 기준으로 구매부서 실무 임직원들의 성과가 평가된다면,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은 결코 근절될 수 없을 겁니다.
구매부서 실무 임직원들의 성과평가 기준, KPI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도급기업과의 상생협력을 통해 장기적 이익증대에 기여한 임직원들이 높은 고과평가를 받고, 반대로 하도급거래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임직원들은 페널티를 받는 식으로 KPI가 바뀌어야 합니다. 나아가 1차 협력업체만이 아니라 2차 3차 협력업체와의 공정거래까지 평가대상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런 건 법으로 규제하기도 어렵고 공정위가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해당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 계신 5대 그룹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노사관계입니다. 개별기업의 노사관계는 자율적으로 결정하실 일이니 제3자인 제가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여기서는 전국 단위의 집단적 노사관계, 또는 노사정 관계에 대해 5대 그룹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노사관계 또는 노사정 관계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현실을 보면, 사용자단체의 역할이 실종된 것이 아닌가 하는 큰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사용자단체가 정부나 노조의 입장을 무조건 따라오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사용자단체가 합리적 의견을 제시하는 건전한 대화의 파트너로 제자리를 잡는 것이 우리 모두의 win-win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역시 여기 계신 5대 그룹이 주도적으로 나서주셔야 할 일일 겁니다. 노사정 3주체가 한편으로는 갈등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적극 노력해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