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주택가 동네카페 '新다방시대' 열다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8.10.04 02:45
언제부터인가 카페는 멋지게 차려입고 나들이를 나서야 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멘 세련된 도시남녀들이 탐방하듯 삼청동과 신사동, 청담동과 홍대 앞을 휩쓸고 다닌다.
동네 한복판에, 골목 어귀에 자리한, 오며가며 드나들던 옛 다방들은 죄다 사라진 지 오래. 휘황찬란한 메뉴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이 유행의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다방문화를 멸종시킨 게 이미 여러 해 전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역사는 반전하는 법. 커피문화의 역사에도 작지만 강력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느 커피전문점 못지않은 맛과 메뉴를 갖춘 작고 소박한 동네카페들이 스타벅스의 글로벌 파워에 질린 이들을, 요란한 번화가의 카페에 지친 이들을 기다리며 하나 둘 주택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바야흐로 동네카페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신(新) 다방시대'다.
◆ 연희동의 스테레오커피(Stereo Coffe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적한 주택가. 언뜻 보면 떡볶이집 같은 작고 아담한 가게 하나가 눈길을 끈다. 문 앞에 각종 화분들이 놓여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테이블 4개와 의자 2개짜리 바 하나가 전부. 아담하고 편안한 공간을 메우고 있는 소품과 인테리어가 소박하고 정감이 간다. 동네카페, '스테레오커피'다.
오창석(32)씨가 친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는 홍대 앞이나 삼청동 같은 '카페 관광지' 대신 동네사람들이 누구나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즈넉한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카페 관광지는 장소가 필요해서 가는 곳이지만, 이곳은 커피가 필요해서 오는 곳이라는 게 주인장들의 생각. 굳이 번화가가 아니더라도 카페를 소비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연희동을 선택했다.
이들이 직접 로스팅하고 드립해 만드는 커피는 여느 고급 카페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맛있다. 작은 동네카페지만, 커피를 볶다 실수하면 그대로 쓰레기통에 쏟아 버리는 주인들의 고집스런 자존심 덕분이다.
인테리어도 특별한 멋을 부리기보다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 주인들이 동네 손님들의 도움을 얻어 직접 만든 것들이라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곳에 위치한 카페가 장사가 잘 될까 싶지만 의외로 이 카페는 성업 중이다. 손님들의 연령대는 꼬마들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이 이곳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다. 하루에 서너 번씩 들르는 단골 손님들도 많은데, 동네카페다 보니 지나가다 들르고, 장보러 가다가 들르고, 자전거 타고 가다가 들르는 그런 식이다.
스테레오커피는 옛 다방문화를 살려 원두와 커피를 배달도 해준다. 개업 후 8개월 동안 두 번의 무료 음악 공연도 했다. 포크 공연과 재즈 공연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주차장이나 땅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구경하는 한바탕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다른 곳에도 이런 동네카페들이 많이 생겨서 커피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엔 동네문화가 너무 없잖아요. 오래된 가게도 없고." 주인장들은 "이런 카페가 동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동네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 효자동의 카페 두오모(Duomo)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한적한 골목길에 자리잡은 카페 두오모는 작고 소박하다. 연두색과 갈색 톤으로 꾸며진 내부,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하늘색의 넓은 창틀.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은 죄다 2인용이고, 큰 테이블은 중앙에 놓인 것 하나뿐이다.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마다 동행이 없어도 거리낌없이 들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친구 허인(38)씨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김희정(37)씨는 "그래서 혼자 오는 손님들에게 각별히 더 신경을 써준다"고 말했다.
'나홀로 손님'들이 부담 느끼지 않고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면서 오랫동안 편하게 쉬고 갈 수 있도록 괜히 다가가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4년 전 낡은 단층 한옥과 다세대주택이 즐비한 주택가 한복판에 두오모를 연 이들은 강북 특유의 정서가 좋아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고 한다.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를 어원으로 하는 두오모는 집 같은 카페, 집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카페를 지향하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 붙여졌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 동네는 카페를 열기엔 뜬금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
"강북이 좋아 삼청동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상업적으로 변한 것이 싫었어요. 옛것이 남아있는, 그런 정취가 살아 있는 고즈넉한 곳을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죠. 옛날 다방은 한 동네에서 오래 자리를 잡았잖아요. 주택가에 있다 보니 오다 가다 들르는 동네분들이 많은데, 우리도 그렇게 동네에 오랫동안 있어 주는 아늑한 곳이 되고 싶어요."
핸드드립 커피와 손수 만든 이탈리아 가정식을 주메뉴로 하는 이곳은 프랜차이즈 커피점과는 다른 '나만을 위한, 나만의 카페'라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
김씨는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는 다수의 취향을 반영하는 대신 그 카페만의 개성이 없다"며 "이런 자그마한 동네카페는 주인의 개성과 취향이 묻어나고 또 그것을 손님과 교감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청와대 연무관 뒷편의 '카페 SOOP'
효자동의 청와대 연무관 뒷편에 숨어 있는 플라워 카페 숲(SOOP)은 누구든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문 없이 뻥 뚫려 있다. 내부는 생화와 나무들로 가득해 정말 숲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 한적한 동네를 산책하다 들러 맛있는 커피 한 잔 하고 가게 만들자는 게 주인장의 소박한 포부다.
주요 고객은 청와대나 인근 경복고에 근무하는 20~30대의 젊은 직장인들이지만, 주택가다 보니 동네 주민이나 노인들도 많이 찾는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달리 편하게 무언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기 때문.
"스타벅스가 디지털 느낌이라면 우린 아날로그죠. 스타벅스처럼 시끄러운 분위기에선 혼자 커피 마시고 책 읽기가 어렵잖아요. 대화에 집중도 하기 힘들고.
하지만 여기는 공간이 남아도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놓지 않았어요." 바리스타 겸 매니저 이일네(26)씨는 "동네카페들은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옛날 다방과 비슷하다"며 "전국 곳곳에 이런 동네카페들이 퍼져 카페문화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잠실의 '김대기의 커피 볶는 집'
서울 송파구 잠실의 작은 동네 골목에 위치한 '김대기의 커피 볶는 집'은 옛날 동네다방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긴다. 인테리어 대신 커피 맛에만 신경 쓰겠다는 주인 김대기(44)씨의 의지 때문이다. 슬리퍼 끌고 오는 동네 손님들이 대부분인 이곳은 로스팅과 드립을 직접 해 만드는 깊은 커피 맛으로 유명하다.
김씨는 "오늘날 이런 카페는 어른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던 옛 다방문화에서 맛이나 분위기가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며 "진짜 카페문화는 옷 차려 입고 일부러 멀리 찾아가야 하는 획일화된 카페가 아닌 동네 사랑방처럼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이런 지역 밀착형 카페에서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강유진 인턴기자(이화여대 4)
'비지니스 정보 > 신제품.회사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젓가락과 조미료가 하나로 (0) | 2008.11.03 |
---|---|
치킨 시장 (0) | 2008.10.17 |
이런상품 대박날까-2 (0) | 2008.10.06 |
생태방음벽(식생방음벽) "EcoSilent" [BizAd]EcoSilent (0) | 2008.10.06 |
식생방음벽 개발 활발 [BizAd]Eco-Silent (0) | 2008.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