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경쟁력’ 미래 기업 성공의 조건
폴크스바겐은 1930년대 히틀러의 부탁으로 포르쉐 박사가 그 유명한 딱정벌레 국민차를 만들면서 시작된 7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 자동차회사다. 현재 도요타, GM에 이어 세계 3위의 자동차업체이다. 라디오헤드는 영국 옥스퍼드셔 출신으로 1986년부터 7장의 앨범을 발표하여 2500만장 이상의 레코드를 판매한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이들의 비즈니스는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딴 세상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물론 라디오헤드의 7장짜리 시디 박스 세트가 온라인에서 7만1500원이고, 폴크스바겐 골프가 3120만원이라고 하니 비교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라디오헤드의 시디 세트 436개를 모으면 폴크스바겐 차를 한 대 살 수 있겠다. 그런데 또 다른 비교도 가능하다. 내가 만약 폴크스바겐의 2007년식 폴로 블루모션을 1년 동안 1만5000km 타고 다니면 이산화탄소(CO₂)를 1.485t 방출한다. 그런데 라디오헤드의 2006년 미국 투어는 이산화탄소 2295t만큼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쳤다. 밴드가 이용한 비행기와, 기름 많이 먹는 큰 차를 몰고 공연장에 간 7만여팬들이 방출한 이산화탄소를 합친 것이다. 이것은 내가 1545년간 차를 몰고 다녀야 될 양과 맞먹는 것이다. 10월 중순을 지났는데도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를 경험하면서 이제 지구온난화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모두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세상은 저탄소 경제, 저탄소 사회로 가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시장에서 우리의 모든 경제활동을 표준화하고 매개하는 단위가 돈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버스 출근’도 ‘와인 한 병’도 모두 ‘탄소배출량’으로 환원
이런 거대한 변화는 우리의 경제생활에서 자원개발-가공-제조-물류-유통-소비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준다. 당신이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을 탄다면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162g, 버스를 탄다면 931.3g, 승용차를 탄다면 3.225kg이 된다. 당신이 런던에 여행을 가서 오스트레일리아산 와인을 한 병 마시게 되었다면 유리병에 담긴 와인은 578g, 페트병에 담긴 와인은 474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런던까지 온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 이후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가장 먼저 여는 등 이 분야를 개척해 온 유럽연합은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표시하게 하고 있다. 과자 봉지에 이산화탄소 배출량 75g, 샴푸 설명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 148g과 같은 표시가 붙으면서, 유럽 소비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가격이나 성능 외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정부규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지난해 설정된 주행거리 km당 160g인 차량 이산화탄소 배출량 허용기준을 2012년부터 120g으로 낮추기로 했다. 유럽의 대표 자동차 메이커인 폴크스바겐의 폴로 블루모션이 km당 99g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자랑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자동차들은 경차인 마티즈와 모닝이 120g 내외이고 중형차 이상이 되면 km당 200g이 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행히 현대가 최근 발표한 신모델 iBlue 모델이 km당 99g을 달성했다고 한다. 이런 정보가 시장의 관심사가 되면 기업경영의 모든 부문이 영향을 받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회계에서도 ‘탄소회계’가 최고 정보 될 것 당신이 마케팅 분야에 종사한다면? 서유럽 정부와 그 지역 소비자들은 ‘저탄소 경제’의 선두주자답게 자신들의 시장에서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논리를 바꾸어가고 있다. 당신의 제품이 탄소경쟁력이 없다면? 당신이 갈고닦은 시장분석 능력, 목표시장 선정 경험, 마케팅 믹스의 노하우는 별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탄소배출량 공개라는 강력한 글로벌 트렌드 앞에서 당신은 연구소와 공장에 끊임없이 전화를 하며 우리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언제쯤 경쟁 제품보다 앞서게 될지 한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생산부문에서 일하고 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신경 써왔던 품질, 원가, 납기는 다 잊어버리고, 에너지효율 향상과 탄소배출량 저감에 가장 크게 기여할 공정기술과 장비가 무엇인지 찾아나서야 될지 모른다. 당신이 연구소에 있다면? 아마도 지금이 당신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고효율 에너지 기술에 매달려 있었거나,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핵심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반면 당신이 연구하던 전통적인 성능 향상 기술이 탄소배출량을 좀 늘릴지도 모른다면, 이는 당신에게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사장님이 발견하기 전에 빨리 그 프로젝트를 숨기거나, 새 이력서를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회계부서에 있는 나는 별 상관없지 않을까? 하지만, ‘탄소회계’ 앞에서 당신이 피할 자리는 없다. 회계는 기업의 모든 활동에 관련된 정보를 내외부 의사결정자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의사결정자들이 가장 알고자 하는 것은 이제 당신 회사의 탄소정보다. 연례보고서에 재무정보 외에, 탄소 배출과 관련된 내부 관리지표를 만들고, 외부 공표와 감사에 대비한 ‘탄소보고서’를 준비하라. 당신이 인사부서의 전문가라면 빨리 회사가 저탄소 시대의 리더가 되기 위한 변신 프로그램을 기획하라. 조직구성원의 행동과 판단을 변화시키기 위한 인센티브 체제를 설계해야 하고, 성과평가 체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물류부서에 있다면? 당신은 이미 유가 및 환율전쟁을 치르면서 장거리 수송을 전제로 한 당신 회사의 글로벌 생산물류체계가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장거리 수송의 최저가 수송수단이던 선박운송은 저탄소경제 시대의 최대의 문제아로 대두되고 있다. 전 세계 상업용 선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연간 12억2000만t으로 전 세계 배출총량의 4.5%에 이른다고 한다. 항공산업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연간 6억5000만t 온실가스 배출로 해양운송의 절반에 이른다. 이런 산업은 현재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리스트의 맨 윗자리에 올라가 있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유럽연합의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권 가격은 t당 21~25유로(한화 약 4만원 내외)를 오르내렸다. 배출권 거래제도보다 좀 더 강력한 효과를 보일 것으로 생각되는 탄소세의 예상 수준은 대개 t당 20달러(한화 약 2만7000원) 정도이다. 이런 부담이 물류산업에 모두 안겨진다면 세계의 제조업과 물류산업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근본적 재편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2013년 제2차 이행기간이 시작되는 것을 다 기다려서 당신의 물류 전략을 바꿀 생각이라면, 당신은 경쟁에 뒤처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승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배출권 거래제? 탄소 줄이면 돈 되는 새 시장 탄소는 이제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체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하나의 시장도 형성하고 있다.
탄소시장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의 기반은 1997년 12월 교토의정서에 의해 마련됐다. 교토의정서는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축목표를 부과했다. 선진국들은 이에 따라 제1차 공약기간(2008~2012년) 동안 1990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탄소시장에서는 공동이행제도(JI)와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에서 얻어진 크레디트도 배출권 형태로 함께 거래된다. 두 제도는 감축비용이 싼 다른 나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이를 자신의 감축실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똑같다. 청정개발체제가 감축의무가 있는 선진국과 감축의무가 없는 후진국 간 협력사업인 반면 공동이행제도는 선진국 간 감축사업이라는 것만 다르다. 특히 청정개발체제는 효율적으로 운영되면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사업이다. 선진국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온실가스 의무감축량을 달성할 수 있고, 개도국은 선진국으로부터 기술과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10월 현재 1186건의 청정개발체제 프로젝트가 유엔에 등록됐다. 이 사업들은 2억2784만t의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런던 증권거래소에 세계 최초의 탄소배출권 거래소가 개설됐다. 현재는 영국을 비롯해,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권의 7개와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모두 10개 거래소에서 배출권이 거래된다. 2005년에는 세계 최대의 유럽연합 배출권시장(EU-ETS)이 출범했다. 유럽연합 배출권시장은 2006년 기준으로 글로벌 배출권시장의 80%를 점유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유럽연합은 교토의정서가 부여한 1990년 대비 8% 감축된 이산화탄소 배출한도를 회원국들에게 나눠줬다. 회원국들은 다시 자국 내 철강, 전력, 화학 등 주요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했다. 이 기업들은 유럽연합 전체로 1만2천여개에 달한다. 해당 기업들은 배출 할당량을 초과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우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들여 목표치를 맞춰야 하고, 반대로 할당량 이하로 초과 감축한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시장에서 팔 수 있다. 기업들은 매년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보고서를 작성해서 공개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전력회사인 PSEG가 2001년 이산화탄소 저감설비를 설치하지 않고도 줄였다고 속여 배출권을 받았다가 발각되어 거래시장에서 퇴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앞으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도 참여하는 글로벌 탄소시장 형성이 전망된다. 특히 중국은 배출권 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청정개발체제 사업의 절반 정도를 시행하고 있어 거대한 탄소시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의 모든 경제활동을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하는 새로운 시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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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곽정수 <한겨레>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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