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예술의 섬…소프트 관광자원의 힘 | |
버려졌던 유원지 그림동화작가 생명 불어넣다 ‘역발상’의 실험, 모든 폐기물이 문화상품으로 텔레비전도 없는 그곳 한달 10만명이 몰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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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안개가 짙게 낀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남이섬 선착장. 초겨울 평일인데도 국내외 관광객들로 길게 줄이 늘어섰다. 배로 10분이 채 안 걸려 도착한 섬은 5년 전 술판과 고성방가로 뒤덮인 유원지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이날 하루 입장객은 2천여명, 텅텅 비던 겨울섬을 찾는 사람은 한달 평균 1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무엇이 이들을 섬으로 불러들이는 것일까?
빚에 몰린 ‘경춘관광’ 시절=북한강 청평호에 떠 있는 반달 모양의 남이섬은 지난 40여년간 버려진 땅이었다. 한때 수도권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모꼬지 장소 가운데 하나였지만, 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바가지요금에 패싸움까지, 말 그대로 ‘막가던’ 유원지일 뿐이었다. 당시 유원지를 관리·운영하던 경춘관광개발은 60억원의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유원지 문화의 쇠락, 외환위기 와중의 경영 악화를 들 수 있겠죠. 퇴직금 걱정만 하던 직원들의 태만도 한몫했겠죠. 금융기관 대출마저 끊기니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죽어가는 모래섬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은 ‘주식회사 남이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강우현(53)씨다. 홍익대 미술대학을 나와 그림동화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2000년 12월31일 아들과 함께 우연히 남이섬을 찾았다가 섬 소유주로부터 최악의 상황에 놓인 섬 경영을 제안받았다. 그는 역제안을 했다. “흑자가 날 때까지 월급으로 단돈 100원만 받을테니 대신 아무것도 간섭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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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묵는 별장에는 텔레비전을 없애버렸다. 단 하루라도 뉴스나 드라마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다. 밤 10시 이후에는 전깃불이 켜지지 않는다. 도회지 사람들은 별밤을 보러 오고 추위에 약한 동남아 사람들은 모닥불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직원들은 봉이 김선달처럼 달빛과 별빛을 팔고 새벽 물안개와 모닥불을 판다. 사슴, 타조, 토끼, 청설모 등 모든 동물은 섬 안에서 자유다. 나무에는 농약을 치지 않는다. 벌레들은 새들의 먹잇감이다. 하찮은 돌멩이와 풀, 나무, 흙더미에도 재미난 이야기를 갖다 붙인다.
남이섬의 경쟁력은 자연에서 나왔지만, 이곳의 자연은 ‘만들어진 자연’이다. 잘 다듬어진 오솔길하며 14만평 섬에 빼곡하게 심어놓은 전나무, 자작나무 등 300여종의 나무들이 그것이다. 남이섬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올해 메타세쿼이어 10~15년생 400그루를 심었다. 일반인에게 한 그루에 9만9천원에 분양해 비용은 한푼도 안 들었다. 나무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수목장도 할 수 있게 한 덕이다.
예술가는 최고로 우대받는다. 글, 그림, 조각, 공연 등을 위한 공간이 제공되고 입장료는 물론 숙박도 공짜다. 이들이 남기고 간 모든 흔적은 예술작품이 된다. 눈앞의 수익은 무시한다. 유니세프와 환경운동연합 등에 목 좋은 곳을 활동공간으로 내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겨울연가’를 잊어라=운좋게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한류 관광의 중심지가 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류 열풍의 덕도 봤겠으나, 겨울연가를 앞세우지는 않는다고 사업본부의 안애림(25) 주임은 말했다.
잘 가꾼 생태환경과 재활용한 쓰레기 조형물, 문화콘텐츠에 아이디어 …. 이런 것들이 모여 ‘소프트웨어 관광자원’이 되고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2001년 27만명이던 입장객은 지난해 167만명으로 불어났고 매출은 100억원으로 5배나 커졌다. 직원 수도 100명을 넘어섰다. 고용 안정에도 한발 앞섰다. 주식회사 남이섬은 올해부터 ‘80살 정년’을 도입했다. 강 사장은 “사람들은 남이섬에 문화콘텐츠가 풍부하다고 말하지만 다양한 국적과 예술가, 화장실 낙서까지 소중히 여기고 문화상품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관광엔 기획만 있고 연구개발(R&D)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뭘 팔 건지 장기간 연구하고 준비해야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이섬/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문화가 살아숨쉬는 ‘나미나라공화국’
세계 책축제 등 다국적 축제 인기
남이섬엔 자연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 책나라 축제가 열리는 매년 봄이면 섬은 온통 책으로 뒤덮인다. ‘내셔널데이’가 있는 날은 국가의 날로 지정된 나라 국기로 섬 전체가 펄럭인다. 주한 외교관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겐 더도 없는 사교 무대이자 고향 잔치마당이다. 올 들어 영국, 폴란드,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등 열두 나라가 돌아가면서 전통 공연과 전시회 등 한바탕 다국적 잔치를 벌였다. 테이프커팅 때는 길게 뺀 가래떡을 손으로 잘라먹는다. 이탈리아 음식 시식회, 한국과 일본의 기모노-한복 패션쇼는 인기 최고였다. 유원지에서 관광지, 관광지에서 문화휴양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남이섬에서 축제는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주식회사 남이섬은 지난 3월1일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선언’을 했다.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권을 발부하고, 화폐와 우표도 발행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인간의 숨소리와 동화되어 문화가 살아숨쉬는 아름다운 동화 속 나라’를 꿈꾸고 있다.
남이섬/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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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가능·눈에 보이지않는 자원개발 필요
관광산업이 21세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쉽게도 눈에 보이는 관광자원은 부족하다. 이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소프트한 관광자원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자연경관이나 문화재 관람 중심의 관광을 넘어서서 관광객들이 한국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식회사 남이섬’은 자연 그대로의 생태환경과 문화콘텐츠를 잘 접목시킨 경영혁신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관광산업은 아이디어 전쟁이기도 하다. 대규모 하드웨어 개발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가 핵심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전통 생활 양식과 음식, 대중문화 등 그동안 눈길을 끌지 못했던 자원을 재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덧붙여 상품화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경주, 설악산 등 관광명소 중심에서 배용준 관광, 이순신 관광, 미용 관광, 사우나 관광, 영화 관광 식으로 관광 형태를 변화시키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관광산업은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대안으로도 거론된다. 관광산업의 취업 유발계수(지출 10억원당 유발되는 취업자 수)는 52명으로 전체산업 평균의 2.5배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석유, 자동차와 함께 세계 3대 산업의 하나로 키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4%로, 일본의 8.9%, 중국의 10.5%에 한참 못미친다. 세계관광기구는 관광산업 비중이 2008년께 20%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서비스수지 적자는 155억달러, 이 가운데 여행수지 적자는 70% 수준인 105억달러나 된다. 국민의 발길을 붙잡고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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