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스크'에 빠진 中 진출기업들

'차이나리스크'에 빠진 中 진출기업들

위안화 강세ㆍ중국정부 규제강화ㆍ치솟는 인건비…

# 상황 1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유명 브랜드 스포츠화를 제조하는 A사 박 모 대표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달 초 임원진과 1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거쳐 2004년 중국 칭다오에 세운 신발공장 문을 닫기로 최종 결정했기 때문이다. 공장용지 매입, 2400여 명의 근로자 채용 등 중국시장에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수십억 원을 투자해 설계한 그의 '차이나드림'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박 대표는 "올해 들어 근로자 인건비가 예년에 비해 50% 이상 폭등한 데다 위안화 강세 등 여파로 더 이상 칭다오 공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 상황 2 휴대폰 액세서리 제조업체 B사 이 모 대표도 지난달 말 100여 명의 한국인 직원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2003년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 설립한 공장 폐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설명했다. "자식만큼이나 아꼈던 중국 공장 문을 닫게 돼 마음 한구석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하지만 고임금에다 중국 정부 규제까지 심한 지금 우리 회사가 더 이상 중국시장에서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앞으로 10년, 20년을 바라봤을 때 '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공장 설립 이후 매년 25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B사의 이번 결정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이 '쇼크'에 빠졌다. 이들에 최근 중국시장은 그동안 '기회의 땅'이라는 의미는 퇴색했고 오히려 위안화 강세와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건비 부담이 중소기업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토지 이용 등에 각종 규제를 쳐놓아 자유로운 경영은 어려워졌다. 이제 중국시장은 돈을 벌어주던 곳이 아니라 돈을 까먹는 시장이 돼버린 셈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앞다퉈 중국시장 탈출에 나서고 있다. 앨범 제조업체인 대명의 박만식 대표는 "위안화 절상으로 인해 원가가 기업들이 감수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며 "특히 외국기업에 관대했던 중국 정부가 최근 태도를 바꿔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대명은 2001년 중국 진출 이후 7년 만에 최근 중국 칭다오 공장 문을 닫았다. 전자부품을 양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T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난징에 있는 중국 현지 공장 폐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철수하더라도 기업 미래를 위해 좀 더 신중한 철수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의도다. 이 회사 김 모 대표는 "지난해 말까지 700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었지만 인건비가 많이 올라 사업 계획이 틀어졌다"며 "생산성이 악화돼 중국 현지 대기업에 공급하는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부터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3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완구업체 H사도 연말까지 3000명 직원의 현지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중국 저장성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이 모씨도 "전 세계 잡화가 모인다는 저장성 이우시에서는 올 5~6월부터 한국인 공장과 상가 철수가 시작된 이래 줄을 잇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아예 중국 현지 공장을 접고 국내에 새로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기업도 있다. 2002년부터 광저우 포산에서 전기히터 등 냉난방기기를 생산해온 코퍼스트는 중국시장 철수를 염두에 두고 현재 경기도 이천 일대에 새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중국 엑소더스는 한국으로의 유턴뿐만 아니라 제3국행이라는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도 부추기고 있다. 완구업계 관계자는 "위안화 절상 등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자 베트남 지역으로 공장 이전을 고려하는 일부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 새로 둥지를 틀려는 국내 기업도 급감하고 있다. 중국 투자 신규 법인 수는 2006년 2301개사로 정점에 달했다가 지난해 2110개사로 줄어든 뒤 올해에는 1062개사(9월 말 현재)에 그쳤다. [홍종성 기자 / 지홍구 기자 / 이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