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힘이쏟는 글

100개 가맹점 보유한 ‘닭꼬치 처녀’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1. 25. 08:16

100개 가맹점 보유한 ‘닭꼬치 처녀’
장정윤 ‘꼬지필’ 사장
장정윤(29) 꼬지필 사장을 처음 만나는 이는 누구나 두세 번쯤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 앳된 처녀가 전국에 100개 가맹점을 가진 100억 매출의 중견 프랜차이즈 기업 최고경영자(CEO)라는 점에 한 번, 자신만의 경영 철학을 확신에 찬 어조로 거침없이 풀어놓을 때 또 한 번.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악바리’로 통한다.

장 사장에게선 평범한 점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그만큼 남다른 구석이 많다는 뜻이다. 그는 10년 전인 열아홉 살 때 영국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에서 ‘닭꼬치’ 노점상으로 나섰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사업을 키웠다. 20대를 닭꼬치 사업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별명도 ‘닭꼬치 처녀’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어요. 돈이 벌리는 아이템을 찾다가 닭꼬치를 택한 것이고요. 그때는 1000원짜리 닭꼬치를 하루 1000개씩 팔았답니다. 돈 세는 기계가 필요할 정도로 대박이 났지요. 그때 벌어들인 1000원짜리 지폐로 지금의 사업을 이뤘으니, 결국 1000원이 100억 원이 된 셈이네요.”

장 사장은 원래 목표대로 닭꼬치를 팔아 번 돈으로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일궜다. 부산에 닭 가공 공장을 세우고 본사를 서울로 옮겼다.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

“나이가 어리다고, 여자라고 해서 손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업계 선배님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많이 이끌어 주세요, 가르쳐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혼자 노력으로 사업을 일으켰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시더군요. 저 역시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장 사장의 회사 역시 평범한 곳이 아니다. 서울 대학로의 본사 사무실엔 유난히 ‘동물’이 많다. 자신의 책상 아래에 강아지를 키우고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옆에선 새들이 산다. 화장실엔 금붕어까지 노닌다. 이런 별난 풍경은 그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돈을 벌어 말 못하는 짐승이나 벌고 싶어도 못 버는 사람을 위해 쓰자, 이것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고3때 우유 배달을 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유기견을 치료해 준 다음부터 변치 않는 생각이에요.”

이런 남다름은 사업 목표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바로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그는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전문점을 런칭하고 싶다”고 말하고 “늘 초심을 떠올리며 세상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커 나가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우정민 ‘더 다다(the DaDa)’ 사장-팔방미인 ‘20억 소녀’ 탄생

“대학 생활의 재미를 포기한 대신 든든한 사업 경험을 쌓고 있죠.”

우정민(23) 사장은 인터넷 쇼핑몰 ‘더 다다(the DaDa)’를 경영하는 대학생 CEO다. 천안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3학년인 그는 2년 전 학교를 1년 휴학하고 여성 의류 쇼핑몰 창업에 도전, 연 2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 회사를 일궜다. 옥션 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 4곳에 입점해 있는 ‘더 다다’는 ‘옷 좀 입는’ 인터넷 쇼핑객들 사이에선 유명한 옷가게다. 인터넷 쇼핑몰 경영자로 유명세를 치른 ‘4억 소녀’보다 몇 수 위의 ‘20억 소녀’인 셈이다.

우 사장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동대문시장에서 수년간 의류업을 해 온 어머니 박정현 씨의 영향이 컸다. 방학 동안 딸에게 ‘알바’를 시켜 본 어머니가 ‘사업가 싹수’를 발견하고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권유한 것이다.

“처음엔 어머니 옷가게의 재고를 싸게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만만해 보였죠. 하지만 6개월가량 판매량이 하루 1~2개에 그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군요. 주문해 준 고객들이 너무 고마워 정성껏 다림질을 해서 보내드렸습니다.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했지요. 그랬더니 고객 평이 좋아지고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진심이 통했나 봐요.”

절절 매던 신생 쇼핑몰은 1만2900원짜리 흰색 셔츠가 히트를 치면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다. 벨트가 포함된 실속 있는 상품을 알아본 고객들이 쉴 새 없이 러브콜을 보냈고 우 사장도 이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예쁘고 품질 좋고 가격이 싼 제품만 골라 내놓자 사업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밤새 매달리던 일은 8명의 직원들 손으로 넘겼고 별도의 사무실도 마련했다. 이번 겨울엔 1만8900원짜리 니트를 1만 장 넘게 팔아치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덕분에 매출도 훌쩍 뛰어올라 지난 한 해 동안 4개 쇼핑몰에서 총 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수천 개 쇼핑몰이 경쟁하는 인터넷 장터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과를 낸 것이다. 순수익을 묻는 질문에 우 사장은 “워낙 가격 경쟁이 치열해 마진폭이 크지 않아 10% 정도”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학생 신분과 CEO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 더구나 20대 초반의 ‘꽃띠’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재미를 포기해야 하니 아쉬움이 클 법하다.

“천안의 학교를 다녀와 사진 촬영과 주문, 포장, 배송을 챙기다 보면 2~3시간 수면에 만족해야 하는 날이 많아요. 그래도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사는 덕에 일찍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든 희생과 포기 없이 얻어지지 않잖아요?”

고은옥 ‘퍼스트레이디’ 사장-경호+마케팅 ‘미녀 보디가드’

1월 15일 아침 7시 30분. 고은옥(29) 퍼스트레이디 사장은 여의도 우리투자증권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9시부터 시작되는 주주총회 경비를 위해 경호원 40명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 시설 점검부터 들어갔다. 그가 경영하는 퍼스트레이디는 경찰청이 허가한 전문 경호·경비법인이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와 늘씬한 몸매의 겉모습에서 그의 직업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탐정이니 보디가드니 경호 무술이니 하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태권도 5단, 경호무술 4단, 용무도 4단에 합기도와 검도까지 연마한 자타가 공인하는 무술 고수다. 게다가 사립탐정(민간 조사원) 여성 1호이며 직접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손의 상처와 꿰맨 자국만이 직업과 어울리는 흔적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와 육상을 해서 활동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군 장교가 되고 싶었지만 명지대 경영학과에 들어가면서 경호원으로 방향을 틀었지요. 1학년 때부터 틈틈이 프리랜서 경호원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대학원에서 경호학을 공부하면서 전문성을 더했습니다.”

고 사장은 지난 2003년 퍼스트레이디를 설립하고 ‘여성 경호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때마침 여성 경호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대학 때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체득한 마케팅 감각을 경호 상품에 접목, 시장을 착착 넓혀갔다. 경호가 정치인 연예인 등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생활 경호 상품’을 내놓았다. 2004년에는 홈쇼핑에 125만 원짜리 경호 상품을 런칭해 1시간만에 1억98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들 등하교에 경호원이 동행하고 스토킹 당하는 여성과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일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요즘 경호원은 고객의 비서이자 참모입니다.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골프나 와인을 배우기도 한답니다. 외국어 전공자는 물론 관광, 비서 분야 경력자를 경호원으로 채용하기도 해요. 그만큼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지요.”

경호 사업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고 사장은 잠시의 고민도 없이 “존재가치를 느낄 때”라고 답했다. 고객의 그림자 역할에 회의가 들다가도 위협을 해소하고 고민을 덜어줄 때 비로소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난해 퍼스트레이디는 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5명으로 시작한 직원 수는 4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 욕심은 아직 끝이 없다. 고 사장은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로 사업을 확대해 글로벌 경호 회사를 만들겠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입력일시 : 2008년 1월 24일 9시 57분 5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