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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거점 유턴’ 일본차 최고 경쟁력 우뚝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1. 29. 00:48

‘생산거점 유턴’ 일본차 최고 경쟁력 우뚝
한국자동차산업 ‘도약 엔진 찾아라’
2부 선진기업에서 배운다 - ② 일본⑴-글로벌 허브 전략
한겨레 곽정수 기자
도요타 등 노사 ‘평생고용 보장-생산력 향상’ 윈윈
혁신성과 국외공장 전파…‘노동강도 심화’ 지적도

일본 자동차업계의 일본 내 공장 신·증설은 도요타만이 아니다. 혼다는 2010년 가동을 목표로 요리이공장을 짓고 있다. 연간 20만대 생산규모의 이곳은 혼다가 1인당 생산대수 50% 향상을 목표로 잡고 최신기술과 설비를 총동원해 짓고 있는 차세대공장이다. 혼다는 기존 사이타마공장 대신에 요카이치에 경차전용 신공장도 짓고 있다. 일본차들의 이런 국내 유턴(U-TURN)현상은 현대·기아차와 대비된다. 현대·기아차가 새로 지은 공장은 미국, 중국 등 대부분 국외에 위치한다.

 

임금도 높고, 땅값도 비싼 일본으로의 생산거점 회귀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 해답은 일본공장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라는 데 있다. 한 예로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 투입된 시간(HPV)이 현대차는 30시간 정도인데 반해 혼다와 도요타는 21~22시간으로 월등히 앞선다. 일본 메이지대학의 오재훤 교수는 “도요타의 일본공장은 최고의 경쟁력으로 글로벌 생산혁신의 허브 역할을 한다”며 “일본공장에서 이뤄진 혁신성과는 국외공장에 전파되어 글로벌 전체의 표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부문 역시 현대·기아차와는 대비된다. 현대·기아차는 국내에 공장을 지으면 오히려 경쟁력이 없다고 말한다. 현대·기아차 자체분석에 따르면 시간당 생산대수(UPH)의 경우 국내 아산공장과 울산공장은 각각 63대와 53대로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93대와 중국 베이징 공장의 68대에 비해 뒤떨어진다.

 

일본공장들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비결은 뭘까? 혼다의 후쿠이 사장은 “자동차산업은 노사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품질이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없다”며 노사협력을 중요하게 꼽는다. 현대차 노사위원회 대표를 지낸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도 “일본 자동차회사는 노동자에게 종신고용으로 상징되는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노동자는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달성하는 윈윈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후쿠이 사장은 “기업경영이 일시적으로 힘들다고 감원을 하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요타의 경우 지난 50여년간 단 한번도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근무형태 전환을 둘러싸고 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10시간+10시간’의 주야2교대 근무방식을 ‘8시간+9시간’의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바꾸는 큰 틀에는 합의했지만, 근무시간 축소와 상관없이 임금보전을 요구하는 노조와, 생산량 보전 및 생산성 향상을 요구하는 회사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전문가들은 고용안정과 생산성 향상을 맞바꾼 일본의 노사협력 모델은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오재훤 교수는 “일본의 경영자들이 노동자를 중시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만큼 노동자들도 회사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일한다”며 “하루 8시간 일하는 도요타 노동자가, 10시간 일하는 현대차 노동자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얘기가 왜 나오겠느냐”고 말한다.

 

도요타의 노동강도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을 정도다. 기업중심주의를 내건 도요타 노조가 사실상 어용화되어 노동자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들이 모여 2006년 제2노조 격인 전도요타노조를 결성했다. 와카츠키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글로벌 경쟁 심화 등을 내세워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강요하고, 매년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도 임금동결이나 소폭 인상만을 하는데 노조는 방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노사협력 모델을 회사주도형인 도요타보다는 노사공동주도형인 독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주쿄대학의 사루타 교수는 “현대차 노사관계를 보면 노조의 경영참여를 통해 노사협력을 하는 독일 폴크스바겐 모델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도쿄·나고야/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회사는 고용 보장 노조는 생산성 높여 대립적 노사 틀 깨야”

박태주 현대차 노사전문위 대표 인터뷰

한국 자동차산업
도약 엔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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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향후 전망은 안갯 속처럼 불투명하다.” 자동차산업 노사관계 전문가인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1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가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후진적 생산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산성이 낮으면, 곧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 교수는 지난 2006년부터 현대차 노사전문위원회 대표로서 노사관계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맡아왔다. 박 교수는 “현대차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국내 공장의 경쟁력을 미국, 중국과 같은 해외 공장보다 높여서 글로벌 허브로 키워야 한다”면서 “그럴려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질 향상과 고용보장을 해주고,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빅딜(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대차는 연간 500만대(기아차 포함)의 생산규모를 구축하며 글로벌 톱5로 발돋음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사간 임금협상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는 진통 끝에 오늘부터 부분파업이 시작됐듯이, 특히 노사관계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데.

 

 “현대차가 좋은 성과를 거둔 데는 우호적인 환율의 영향도 있지만 해외생산 전략과 품질경영의 성공, 뛰어난 엔지니어링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해외생산과 품질경영의 성공은 정몽구 회장의 의지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노사관계가 큰 걱정거리다. 단순히 노사관계가 대립적이라거나 해마다 파업이 일어난다는 측면을 넘어 현대차의 후진적 생산방식과 대립적 노사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악순환의 관계에 있다. 회사쪽의 설비 의존적, 노동배제적 정책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면서 대립적 노사관계를 낳고, 이것이 다시 노동배제적 생산방식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이것이 현대차의 낮은 생산성의 근본원인이 된다.”

 

- 실제 현대차의 노사관계만 보면 지금의 성공이 믿기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대립적 노사관계가 어떻게 낮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가?

 

 “예를 들어 신차를 개발하면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작업방식과 인원을 결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투입인원을 배정하는 것인데, 한 사람의 노동자가 정상적인 조건에서 1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인 ‘작업공수(Men Hour)’ 기준에 따라 결정한다. 그런데 현대차는 노사가 동의하는 작업공수의 기준이 없다. 물론 회사쪽의 기준은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매번 작업인원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 자동차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의 유연성 확보가 중요한데.

 “자동차회사가 여러 종류의 차를 만들지만, 어떤 차는 잘 팔리고, 어떤 차는 잘 팔리지 않는다. 또 같은 차라도 계절이나 경기 등에 따라 수요 변화가 일어난다. 회사로서는 잘 팔리는 차에 인원을 많이 배정해서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립적 노사관계에서는 이같은 물량이관이나 전환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설비나 인원을 효율적으로 가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쪽 공장은 주문이 밀려 일손이 딸리는데, 옆 공장은 재고가 쌓여 족구나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 현대차 노사는 후진적, 대립적 노사관계의 책임을 놓고 서로 상대방 탓을 하는데?

 “현대차 노사관계는 한편으로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담합적 특성을 갖고 있다. 노사관계가 대립적인 근본이유는 고용불안 때문이다. 회사 형편이 어려워지면 고용보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노조쪽의 불신이 깊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잘리기 전에, 벌 수 있을 때 무조건 많이 벌어두자는 생각에 빠져 있다. 회사쪽이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을 위해 설비자동화, 외주화, 모듈화에 힘쓰고, 해외생산을 확대하는 것에도 노동자들은 우려를 한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담합적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비용은 외부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과점시장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높은 가격을 전가하고,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해 회사와 노동자들은 많은 이익과 임금을 얻는다.”

 

- 회사쪽은 선진국 자동차업체에 비해 노조의 경영·인사권 간섭이 많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공장 이전 및 통폐합, 사업장간 차종 이관, 영업지점 이전 및 통폐합, 인력 전환 배치 같은 사안들이 모두 노조의 동의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일 폭스바겐을 예로 들어보자. 폭스바겐은 이사회 격인 경영감독회의 절반을 노조원이 차지하면서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가 이뤄진다. 또 종업원평의회를 통해 생산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이 거의 이뤄진다. 한마디로 모든 의사결정이 노사협의를 통해 이뤄진다. 독일이 산별노조체제이지만 노사관계가 협력적인 이유는 이런 경영참여 때문이다. 반면 현대차의 경영진은 노동배제적이다. 현대차 노조의 간섭이 심하다고 말하는 경영·인사권은 알고 보면 대부분 고용관련 사항이다. 고용불안이 심하니까 자꾸 관여하려는 것이다.”

 

- 현대차의 대립적 노사관계와 달리 선진국의 자동차업체들은 노사협력을 통해 고용안정과 생산의 숙련성·유연성을 동시에 이루면서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데.

 “폭스바겐 노사는 1993년 ‘고용안정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업협정’을 맺었다. 해외로의 공장이전을 막기 위해서 국내공장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것이다. 국내 경쟁력을 확보해 국내에서 생산과 수출을 늘리면 일자리는 자연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자동차산업 세계 4위에 올라있는 것은 이같은 협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지엠 노사도 2007년 단협을 통해 비용절감과 경쟁력 향상, 고용안정에 합의했다.”

 - 현대차 노사 협상안에는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하는 데 큰 계기라 될 것으로 기대되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건이 포함돼 있다.

 “잠정합의안을 보면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취지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통한 …자동차산업의 영속적 성장과 전 조합원의 고용보장 및 생산성 향상’으로 명시돼 있다. 단순히 근무형태만 바뀌는 게 아니고, 생산방식과 공장 개조를 통한 경쟁력 제고의 단초를 제시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물량 확보 문제가 관건인데, 그 열쇠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회사는 설비투자 확대, 생산성 기준 재정립, 유연성 확보, 교육훈련 강화, 숙련 친화적인 임금·승진체계 도입을 포함한 생산방식의 전면적인 개혁을 이뤄야 한다. 이는 5~10년을 두고 중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다. 그 영향은 기아차→지엠대우와 쌍용차→자동차부품업체→금속산업 순으로 확산되면서, 다른 산업이나 한국경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 현대차 노사 잠정합의한이 부결된 이유와 향후 전망은?

 “일종의 노-노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장점합의한 내용을 보면 큰 틀에서는 문제삼을 것이 없다. 노사가 생산물량 보전이라는 큰 틀에 합의하면 나머지 작은 문제들은 자동으로 해결된다. 노동자들의 임금보전과 단계적 이행, 물량 확대와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설비투자 확대, 생산의 유연성과 생산성 높이기, 협력업체와의 상생발전과 같은 것들은 기본적이다. 정몽구 회장이 2010년 600만대 생산체제 구축의 비전을 내놨지만, 고용보장과 삶의 질 향상을 통해 노사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비전도 나와야 한다. 근로자들도 국내공장의 생산성이 해외공장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출처: 한겨레 신문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