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디자인경영' 해답은/ 먼저 소비자의 욕구를 읽어라

■'한국식 디자인경영' 해답은

이은형 국민대 교수(경영학)

 

국내 기업의 디자인 경영은 1995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에서 출발했다.미국, 유럽 시장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뒷자리에 밀려나 있는 전자 제품을 임원들에게 보여주며 '디자인 경영'을 외친 이후 10여 년 만에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영국왕립예술학교의 탐 바커(Barker) 교수,미국시카고공과대학 디자인대학의 패트릭 휘트니(Whitney)교수는 "한국의 대기업처럼 빠르게 디자인 경영의 개념을 도입하고 실행하는 기업을 전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한국 기업의 디자인 경영 성공사례를 살펴 보면 진화(進化)의 포인트를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내 디자인 경영 챔피언 기업들은 이제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제품의 외형과 포장을 치장하는 '스타일 단계'를 넘어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유형·무형의 경험을 창출하고, 미래의 고객 욕구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문제 해결 단계'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최근LG전자는 복잡한 기능을 생략하고, 화면의 글씨를 2배로 키운 일명 '와인폰'을 출시했다. 모니터의 작은 글자를 보기 위해 안경을 벗거나, 돋보기를 사용해야 했던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제품은 소비자에게 단순히 스타일이 멋진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편안한 경험,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소비자의 휴대폰 사용 행태에 대한 깊은 관찰과 분석이 없이는 나오기 힘든 제품이다.

전자산업 못지않게 디자인경영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분야는 건설이다.삼성물산래미안,GS자이,대우푸르지오,대림e편한세상 등의 브랜드는 이미 멋진 인테리어를 넘어 소비자의 즐거운 경험을 창출하고 있다. 주방을 주로 사용하는 주부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거나, 그들을 디자인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주방을 문화의 공간, 가족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둘째, 한국 기업의 디자인경영은 서비스 산업에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금융계의현대카드, IT업계의네이버, 통신의KTF등을 들 수 있다.

현대카드는 독창적인 스타일의 카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로고, 그리고 쇼핑, 교육, 문화 등의 영역에서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으로 일약 신용카드 업계의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현대카드디자인경영의 포인트는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기업 문화에 있다.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모든 프로젝트는 9시간 이내에 결재되며, 사장 주재 회의에도 지정된 좌석이 없다. 구내 식당에는 주방시설이 있어서 직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사무가구, 인테리어 등은 근무환경을 위해 최대한 안락하게 만들면서도 전체적으로 현대카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디자인을 활용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기업 문화를 창의적으로 유지함으로써, 현대카드는 2003년 9000억원의 적자기업에서 지난해 7000억원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성공적인 디자인 경영의 포인트는 바로 '소비자의 본질적 욕구를 파악하는 능력'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소비자를 깊게 관찰함으로써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 '소비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욕구를 발견함으로써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 경영의 핵심이다.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데 쓰이는 가장 중요한 기법은 아이데오와 마찬가지로 '라이프스타일 관찰'이다. 이 기법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팀이 바로삼성전자의 UDS(User driven sensing)와 LG전자의 LSR(Life soft research)이다. 이곳 디자이너들이 수시로 코엑스나 대학가 등을 찾아 하루 종일 소비자들을 관찰하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되, 생활에서 분리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소비자'를 관찰한다. 이는 소비자를 몇 명 선발하여 회사로 불러들인 다음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존 방식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UDS, LSR에는 디자인 전공자보다 경영학, 심리학, 사회학, 엔지니어링 등을 전공한 사람이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한국기업의 디자인 경영에도 과제는 있다. 현재 일부 업종, 일부 대기업에만 국한된 디자인 경영이 다양한 업종, 그리고 중소기업에도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의 문화적 감수성, 디자인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그리고 기업의 창의적 문화 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기사출처: 조선일보 위클리비즈(200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