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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품 “고맙다, 엔 강세”…일본서 러브콜

성공을 도와주기 2009. 4. 23. 11:25

한국부품 “고맙다, 엔 강세”…일본서 러브콜

 

“일본산보다 싸고 중국산보다 질 좋아”
가격경쟁력서 ‘역샌드위치’ 효과 톡톡
지엠비 등 한국산 조달…유럽서도 관심
한겨레 황예랑 기자

엔화 강세 바람을 타고 일본 기업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일본산보다 싸고 중국산보다 질 좋은 한국산 부품·소재’를 구하려는 행렬이다.

일본 자동차부품업체 지엠비(GMB)의 자재구매담당 다바타 다카아키 과장은 한국 부품업체 4곳의 견적서를 들고 최근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 16~17일 지식경제부와 일본 경제산업성 주최로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한·일 부품소재 조달·공급 전시회’에서 이들 업체를 만났다. 다바타 과장은 “지난해 원이 싸서 30억원 가량 한국산 부품을 썼고 전체 조달품 가운데 한국산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며 “도요타가 자동차 강판 납품업체를 포스코로 바꾼 것을 계기로 일본 기업들의 한국산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엠비는 앞으로 워터펌프를 비롯한 한국산 부품 조달규모를 앞으로 연간 2천만엔(약 27억원) 가량 늘려 원가 절감을 꾀하기로 했다.

한·일 부품소재 조달·공급 전시회에선 지엠비 말고도 자트코(JATCO), 쓰미토모상사 등 일본 업체 59곳이 참가했다. 미쓰비시전기에서는 산하 공장 7곳의 구매담당자들이 각각 참가해 냉장고와 에어컨 부품 등 120가지 품목을 살펴보기도 했다. 전시회 주최 쪽은 일본의 참여업체가 애초 예상했던 30곳을 훌쩍 뛰어서 150곳이 넘는 부스를 채우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전시회 동안 600여건의 상담이 이뤄져, 약 3천억원의 수출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주최 쪽은 기대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산 부품·소재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 직접적 계기는 엔화의 ‘고공행진’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해도 100엔당 9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현재 1300원대로 껑충 뛰어 있다. 김태호 코트라 부품소재산업팀장은 “엔고 때문에 일본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한국 등 국외로 아웃소싱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소니와 샤프는 최근 ‘한국 부품 조달 확대’를 회사 방침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환율 덕분에 국내 부품·소재산업은 ‘역샌드위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품질로는 일본제품에 뒤지고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산에 추격을 당하는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는 호기를 만난 것이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소재로 전기전자제품을 만드는 프리덤(Freedom)의 다카하시 가즈히로 대표는 한국 업체와 거래를 트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그는 “중국산 엘이디를 구매했다가 20~30%나 되는 불량품을 반품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며 “고품질이 기대되는 한국산 엘이디 본체·기판 등 500만달러어치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뿐 아니라 유럽 완성차업체들도 한국산 부품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인테리어나 외장재에 들어가는‘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쓰다가 지금은 핵심 정밀부품으로까지 넓혔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경우 한국산 부품 구매를 일본 지사에 맡겼다가 지난해 하반기에는 한국에 부품구매 사무소를 따로 차렸다. 그만큼 물량이 늘어난 까닭이다. 이달초 베엠베(BMW)그룹의 구매담당 총괄 사장이 현대모비스를 방문하는 등 유럽업체들의 한국 부품업체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부품·소재산업은 경기침체기를 맞으면서 수출과 무역수지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133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지만, 부품·소재 쪽에선 무려 342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300억달러 안팎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3년째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대일 무역적자의 67%가 부품·소재일 정도로 아직 정밀, 핵심분야에선 일본 제품 의존도가 높다. 지금 고환율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는 국내 업체들로선 언젠가 환율이 안정돼 가격경쟁력에서 뒤지게 되는 상황도 걱정이다. 공작기계용 부품을 미쓰비시 등에 수출해 지난해 331억원의 매출을 올린 ㈜대성하이텍의 장영석 팀장은 “중국업체들이 품질과 정밀도에서는 아직 우리 기술력을 따라오지 못하지만, 일본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내 업체들은 달러나 엔화 가치가 높은 수준에 있을 때 수출 기반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여러가지 전략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