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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6070’ 보면 이명박 정부가 보인다

성공을 도와주기 2009. 4. 30. 22:24

‘파워 6070’ 보면 이명박 정부가 보인다

시사IN | 고제규 기자 | 입력 2009.04.30 14:26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수사해야 할 것으로 본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네르바 수사 여부에 대해 답변했다. 얼핏 원론적인 언급으로 보였지만, 다름 아닌 김 장관의 발언인지라 무게가 실렸다. 김 장관의 말은 늘 허언으로 그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그는 정부 인사 가운데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배후'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아침 6시30분 법무부 간부들을 서울 세종로 법무부 사무실로 '비상 소집'한 자리에서다. 또 조·중·동 광고 중단운동에 대해서도 검찰에 '특별단속' 지시까지 내렸다. 그의 말은 곧바로 실행됐다.

↑ ⓒ시사IN 양한모 그림

그가 수사 필요성을 언급한 지 꼭 석 달 뒤, 검찰은 지난 1월10일 박대성씨(필명 미네르바)를 구속했다. 그것도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에서 그를 붙잡았다. 표적 수사 논란이 일자, 검찰은 "12월29일 정부가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명령을 발동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뒤 내사에 착수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 해명과 달리 12월 초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포털 사이트 다음으로부터 박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아이디 등을 넘겨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급심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박씨는 지난 4월20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에서는 내심 곤혹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 장관의 '오버 행보'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망신만 당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장관이 야인 생활을 하다 돌아와서 그런지 바뀐 현실을 모르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돌아온 올드 보이'들이 세상과 엇박자를 내면서 다시 주목되고 있다.

권토중래 10년 만에 정권을 찾았으니 정책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좌우 방향이 아니라 앞에서 뒤로 뒷걸음질 친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김 장관처럼 돌아온 '6070 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100대 요직 평균 나이는 56.5세( < 시사IN > 제76호 참조). 참여정부 당시 100대 요직 평균 나이인 55.4세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386 세대가 중심이 된 40대는 대폭 감소했고, 그 자리를 6070 세대가 차지했다. 집권 2년차를 기준으로 100대 요직을 세대별로 나눠보면, 40대는 2005년 참여정부 당시 11명에서 8명으로 줄었고 50대도 68명에서 56명으로 감소했다. 대신 이명박 정부 들어 60대가 18명에서 3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김경한 법무부 장관, 강만수 국가경쟁력발전위원장 등은 정권 초기부터 '롱런' 중이다. 게다가 한승수 총리를 비롯해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비롯해 사공일 대통령 경제특보 겸 무역협회장 등 70대도 권력의 요직을 차지했다.

수평적 소통보다 수직적 리더십

생물학적 나이를 근거로 '6070 리더십'을 구닥다리로 폄하하는 것은 불합리한 '낙인찍기'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몸에 밴 '고전적인' 리더십 문화가, 바뀐 세상이나 세대와 엇박자를 내면서 관가에서 불평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장급을 차지하는 3040 허리 세대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6070 세대는 1930~1940년대생이다. 이들은 주로 군사정권 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다. 대개 사회생활의 첫발을 박정희 정권 때 뗀 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쳐 김영삼 정부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이상득·최시중·한승수 등 이명박 정부 '실버 트로이카'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이상득 의원 은 1961년 4월 한국나이론에 입사하면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1964년 동양통신 기자를 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승수 총리는 영국 요크 대학 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 의원이나 한 총리는 나란히 1988년 13대 국회 때 정계에 진출했다. 한 총리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년 12월 상공부 장관을 거쳐,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김경한 장관이나 강만수 위원장도 얼추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잘나가던 이들은 정권 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권력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강 위원장은 1998년 DJ 정부 출범과 함께 재정경제원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났다. 특히 이들은 386 세대가 주축이 된 노무현 정부 때 아예 설 자리를 잃었다. 김경한 장관도 법무부 차관까지 지내다 2002년 퇴임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돌아온 6070 세대는 길게는 10년 만에 권력의 핵심에 다시 앉은 셈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돌아온 6070 세대의 특징을 '권위주의'와 '반디지털'이라는 열쇳말로 풀이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세대론적 관점에서 이들은 민주화보다는 권위주의가, 디지털 문화보다는 아날로그 문화가 익숙한 세대라고 평했다. 5~6공 시절 전성기를 누렸기에 민주화 운동을 '데모'로 치부하고 관리하는 데 익숙하며, '로그인 정부'로 상징되는 노무현 정부를 관전하면서 인터넷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의 진원지 정도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1960년대 청년문화 시대를 거친 미국의 60대가 세대적 관점에서 진보적인 데 반해 한국의 파워 60대는 권위주의가 내재화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인터넷 사이버 모욕죄 도입에 적극적이거나 '일벌백계' '배후' 따위 한동안 사라졌던 용어를 다시 쓰며 법치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6070 리더십의 특징은 참여정부 당시 관료 문화와 비교하면 도드라진다.

첫째 이들은 수직적 리더십을 중시한다. 중앙 부처의 실무자급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초기에 연공서열의 관료 문화를 뒤흔든 상징적인 조처가 다면평가제 도입이었다. 관료 사회 특성상 다면평가 도입으로 연공서열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권위적인 상명하복 문화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줬다"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수평적 통로가 확보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수평적 소통은 다시 막혔다고 한다. 수평적 소통보다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질서가 강조되다보니 10년 전으로 뒷걸음질 치는 분위기라고 한다. 중앙 부처 한 관계자는 "우리 부서만 보더라도 실·국장을 빼면 거의 모두 1980년대 이후 학번들로 어찌 보면 민주화 세대인 셈인데, 요즘 무조건 상명하복과 대외 보안만 강조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윗분(장관)이 보고를 받다가 토씨 하나 트집 잡아 반려하면, 예전 같으면 중간에서 바로 고쳐서 통과시켰는데 요즘에는 기안 보고자인 말단까지 내려보낸 뒤 다시 거꾸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명하복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계속 책임을 미루는 일종의 보신주의가 강화되는 부작용도 있는데 최근 그런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불도저 리더십 확산

수직적 리더십에 이어 6070 세대들은 거의 마음을 비웠다가 '컴백'한 경우가 많아, 본인들이 확신에 찬 행보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나이 때문에 다음 자리를 바라지 않아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나를 따르라'며 거침없이 행보하는 식이다. 이런 행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어윤대 국가브랜드 위원장이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기업 CEO나 서울시장 할 때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앞장서는 리더였지만 금은 뒤에서 밀어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나를 따르라'식 리더십이 6070 세대에 이심전심 공유되며 확산되고 있다.

'방통대군'으로 불리는 최시중 위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구글의 대립에서도 6070 리더십의 단면이 엿보인다. 알려진 대로 발단은 인터넷 실명제였다. 구글은 지난 4월9일 방통위가 총대를 멘 인터넷 실명제를 표현의 자유를 들어 정면으로 거부했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한국' 국적으로 동영상 등을 올리는 기능을 차단하면서 실명제 적용을 피해 간 것이다. 이를 두고 최시중 위원장은 4월15일 국회 문광위에서 "상업적인 처사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제재를 위해)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방통위 안에서는 최 위원장의 '검토' 발언이 있기 전부터 이미 발칵 뒤집혔다. 구글에 대한 징계거리를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사실상 윗분이 책임질 테니 건수만 찾으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이를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리더십'이 6070 세대를 통해 증폭되는 것이라고 평했다.

특정 정책에 개인적인 경험을 덧칠해 밀어붙이는 것도 6070 리더십의 또 다른 특징이다. 종합부동산세 혐오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강만수 위원장이 좋은 보기다. 강 위원장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책임을 지고 재경원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10년간 야인으로 지내면서 종부세에 데다시피 했다고 한다. 공시가격이 20억원인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그는 종부세를 내기 위해 20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10년 동안 야인으로 있으면서 소득은 없는데 종부세만 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부세는 야만적 세금'이라거나 '고소득자에게는 대못을 박아도 되냐'며 대놓고 종부세 혐오증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강 전 장관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종부세는 없어져야 할 세금이라고 판단했고 종부세율 조정을 두고 당정 간 갈등에도 꿋꿋하게 밀어붙였다"라고 말했다.

수직적 리더십, 개인적 경험이 덧칠해진 확신에 찬 드라이브로 요약되는 6070 세대 리더십은 앞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청와대는 3·1절을 맞아 나라사랑 랩송이라며 그룹 '빅뱅'과 '함께 힘내라! 대한민국' 등을 제작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웃음거리로 끝났지만 2009년판 '새마을 노래'는 또다시 시도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임기가 앞으로 4년이나 남았고, 강만수 위원장처럼 6070 세대가 회전문을 돌며 자리만 바꾸고 요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시사IN  고제규 기자 / unjusa@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