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를 지향하는 애플(Apple)
2010년 1월 27일. 애플社의 야심찬 신제품 아이패드(i-Pad)가 세상에 첫 선을 보였던 날. 프리젠테이션의 달인, 스티브 잡스는 제품 설명을 마치며 어떻게 애플이 세상에 없던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애플이 아이패드와 같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는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 있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기술적 관점에서 가장 발전된 제품을 만들되, 동시에 이해하기 쉽고, 사용하기 쉬우며, 즐겁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딱 맞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평소에도 대학시절 경험했던 고전 읽기 프로그램 같은 것이 창의적 사고를 증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 공교롭게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인 페이스 북(Facebook)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역시 그리스-라틴 고전을 읽는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언급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가장 창의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경영자들이 인문학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 위기의 인문학. 인문학에 대한 갈증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좀 다른 것 같다. 기술과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추어 생산도 소비도, 심지어는 사랑조차도 ‘빨리 빨리’ 해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공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심지어 고루하기까지 한 인문학의 가치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청년층 취업난 속에 학생들은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 전공을 기피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소위 ‘경쟁력 없는’ 인문학과를 통폐합하려는 학교 본부와 전공을 지키려는 교수-학생간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서점에서는 인문학 도서를 소개하는 서가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돈이 경쟁력이고 사회적 위상이며 그 사람의 인품을 대변하는 한국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동안 쌓여온 갈증을 풀어주는 단비와 같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저자가 ‘인문학이란 이런 것이오’라는 식으로 처음부터 끝가지 개괄한 것이 아니라,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KTV에서 방영되었던 「인문학 열전」 강의 가운데 백미라 할 수 있는 열세 편만을 골라 엮은 「인문학 콘서트」 시리즈의 첫 권이다.
문학, 철학, 사회학, 윤리학, 생태학 등 각 분야에서 一家를 이룬 전문가들이 참여한 만큼 가볍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쉽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정진해온 화두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각기 다른 분과학문에 속해있을지언정 대한민국 최고 지성의 반열에 올라있는 이들에게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식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값지다.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위키피디아에서 ‘인문학’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인문학(人文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 역시 매우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책 전체의 서론 격인 ‘우리 인문학의 길’(김광동?김기현)은 인문학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에게 왜 인문학이 중요한지를 논의한다. 또, 오늘날 지식의 통합과 통섭이 왜 중요하고, 미래지향적 학문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최재천, 김광웅), 우리나라 교육의 바람직한 미래는 어떤 것인지(문용린) 등도 서론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종교에 대한 열린 상상력(정진홍), 새로운 시대의 윤리의식(황경식)과 사랑(고미숙), 심지어는 미래사회에서 뇌 과학의 역할(김효은)이나 생명사상(장회익), 숲의 생명력(차윤정)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소외와 권력의 재편(박정자, 김영한), 고전이 주는 의미와 고전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노학자의 절절한 호소(도정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기존 인문학의 범주라 보기 어려운 생물학, 인지과학이나 다중지능 이론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 미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동시에 발명가이자, 해부학자이자, 건축가, 기계공학자였던 것과 같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각 학문분과가 서로 담을 쌓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이 책이 「인문학 콘서트」로 이름 붙은 것도,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이고, 개별적인 낱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분화되어 있는 각 분과학문 간의 대화 - 소위, 통섭과 전체적인 조화가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왜 지금 인문학인가?
그렇다면, 굳이 왜 지금 우리가 인문학을 살펴봐야 하는 것일까?
“1970~80년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인문학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유신 말기 어려운 시절에 이념적인 갈등도 많았고, 또 그 이후에 이념적 변화를 겪으면서 과연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한 고민도, 관심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로 퍼져 나갔고, 미국의 일방주의적 이념이나 경제 중심적인 사고가 지배하면서 지난 10~20년은 이념이나 사고가 매우 빈곤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중략)...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관심은 그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이랄까, 그런 계기와도 맞물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우리 인문학의 길, 김경동,김기현, 20~21쪽)
얼마 전부터 국내 대학에도 ‘최고경영자 인문학 과정’이나, ‘미래지도자 인문학 과정’ 같은 것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인문학과 기술의 융복합을 목적으로 삼는 인터랙션사이언스 학과라는 것까지 설립되었다고 하니,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인문학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생겨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가 새로운 시장기회를 포착하고 제품이나 기술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것에만 한정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자기 삶의 의미를 알고, 삶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포괄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나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우리 현실에서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에서 개인적인 관심을 정립한다든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 인문학의 길, 김경동,김기현, 23쪽)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인문학은 그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생존의 필요조건인 공통의 가치관이자 문화이고, 품격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34쪽)이라고 말한다.
■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
①사고(思考)하는 방법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4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신언서판은 중국 당나라에서 유래했는데,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용모, 언변, 붓글씨(필적), 판단력의 4가지를 이르는 말이다.그중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평가가 어려웠던 것이 아마 판단력이 아닐까 싶다. 용모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고 언변이나 붓글씨는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단기간에 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열을 가리기도 쉽지 않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판단력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라기보다는 문제를 ‘思考하는 방법’에 가깝다.
지식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공서적을 읽거나 남들이 모아놓은 정보를 활용하면 된다. 그도 아니라면 인터넷 지식검색 사이트를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매번 네이버에 물어본다고 원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접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사고해보거나,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 철학이나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고, 인문학이 주는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언뜻 보기에는 무용지물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삶에서 겪는 어려움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즉 무용한 듯이 보이지만 큰 쓰임이 있는 학문”(새로운 시대의 윤리, 황경식, 176쪽)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②상상력과 새롭게 바라보기
사람들이 ‘가장 혁신적인 기업’ 하면 애플을 떠올리도록 만들었던 아이팟이나 아이폰, 아이패드는 사실 기술적 혁신의 상징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하나같이 창의성의 코드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장과 기업간 경쟁원리를 통째로 바꾸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이유 역시 인문학이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다른 것을 시도하는 데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을 창의성의 보고(寶庫)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익숙한 방식, 당대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고나 방법론을 추종하기만 해서는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 만일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조각가, 음악가, 건축가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 않고, 그저 과거방식을 더 잘 따르기 위해서만 노력했다면 인류 문화사의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 문명이 과학의 발전에 빚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문명이 만들어지도록 이끈 힘은 상상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왔고, 무수히 많은 무모한 시도들이 축적된 결과물이 아닐까?
“신화를 현대문명으로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학의 힘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과학의 힘만으로 가능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인들이나 베이컨 같은 사람들의 인문적 상상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인문적 상상력과 과학의 힘, 이것은 현대문명을 창조한 두 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인문적 상상력이 없다면 문명이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잃게 될 것이고, 과학의 힘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꿈과 상상력은 백일몽으로 끝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아무리 과학만능의 시대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과학을 이끌어가는 인문적 상상력임을 새롭게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유토피아를 꿈꾸다, 김영한, 381쪽)
③삶의 여유와 자신을 사랑하기
잠깐이라도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밥줄 끊기기 십상이라는 우울한 개그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서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지나친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도대체, 바흐(Bach)가 음악의 아버지건 어머니건 그게 내 삶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단지 교양인으로 비춰지기 위해 괴로움을 이겨가며 동양 고전을 읊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 싯구절들을 암송해야 하나?
몇 년 전 거리의 노숙인을 상대로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는 짤막한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직장도, 가족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에게, 당장의 일용할 양식이나 잠자리가 무엇보다도 급한 이들에게 거창한 인문학이라니! 하지만, 성프란시스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노숙인 대상의 인문학 강좌를 이끌었던 임영인 신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당장의 밥과 돈과 잠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 통한 것은 노숙인들이 ‘자기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 그럴 자격도 있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눌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자기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가치는 당장의 밥벌이라는 유용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긍정성과 삶의 여유를 회복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자양분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닐까?
“저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철학의 기능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근본을 바라보고,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궁극적 관심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 철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새로운 시대의 윤리, 황경식, 153쪽)
④우리 삶 곁에 늘 존재했던 인문학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매우 어렵게 느낄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이런 건 배부르고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은 원래 그렇게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우리 삶과 별 상관없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갈망에서 인문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며 삽니다. 옆에 누군가 굶주리고 있다면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누가 아프면 병실에 찾아가 위로합니다. 남의 경조사에 예의를 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반드시 인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인문 문화적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중략)... 사실, 인문학적인 관심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관심과 직결되어 있습니다.”(왜 ‘책’이어야 하는가, 도정일, 294~295쪽)
KTV에서 「인문학 열전」 좌담회를 진행했던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이 책 머리말에서 ‘인문적 소양’이 “노숙인에서부터 기업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세상살이의 기초”라고 힘주어 말한다. 구체적인 소용이 없더라도,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그 무엇인가를 제공해준다면 인문학이 가까이 올 때 거부하지 말자. 돈보다 물질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치가 있기에 인간이 그 어떤 존재보다 존엄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왜 지금 인문학인가?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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