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공장서 벤젠 '1급 발암물질'을 얼마나 쓰는지 아세요?
한겨레 입력 2016.08.07. 13:16
[한겨레][토요판] 뉴스분석 왜?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
울산광역시 남구 선암동.
대규모 화학단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이곳을 기준으로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을 작동시켰다. ‘우리동네 위험지도’는 스마트폰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전국 3200개 업체에서 내보내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배출량 및 발암성·생식독성, 환경호르몬 여부 등 해당 물질의 위험정보를 제공한다. 앱에서 이 지역을 손가락으로 2초간 누르자 반경 2㎞ 내에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19개 사업장이 떴다. 가장 가까운 곳은 태광산업 울산공장. 이곳에선 1급 발암물질인 황산과 2급 발암물질인 아크릴로니트릴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1.7㎞가량 떨어진 롯데케미칼 울산1공장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연간 1927.8㎏ 배출됐다. 2세 기형 등을 유발하는 생식독성물질인 톨루엔도 2250.7㎏ 배출된 것으로 나온다. 2㎞쯤 떨어진 이수화학 울산공장에서도 벤젠은 219.6㎏ 배출됐다. 모두 시민단체인 ‘화학물질네트워크’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알아낸 수치다. 같은 1급 발암물질인 황산도 사용됐지만 배출량과 취급량은 기업의 거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수화학 공장에선 맹독성 물질인 불산 1000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예고된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다.
주변 공장 유해물질 정보 제공하는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 작동해보니
울산 선암동 부근에만 공장 40여곳
발암물질 벤젠·황산 수천㎏ 배출해
기업 “영업비밀” 20% 정보만 담겨
2년새 10여차례 화학사고 난 울산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화학물질 취급
대부분 설비 30~40년 노후화 원인
2014년 전국서 벤젠 등 1천t 배출
‘지역사회알권리법’ 국회 통과 시급
미·영, 사업주 사고 책임 엄히 물어
반경을 4㎞로 넓히면 공장의 수는 배 이상 늘어난다. 선암동에서 4㎞ 떨어진 효성 용연3공장은 3급 발암·생식독성물질인 디클로로메탄을 4만8181㎏ 취급해 이 가운데 3만9015.6㎏을 배출한 것으로 나온다. 지난 3일 이곳에선 삼불화질소(NF3) 배관이 폭발해 7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암모니아와 불소에서 고온·고압으로 추출한 삼불화질소는 반도체나 엘시디(LCD) 마이크로 회로를 세척할 때 쓰이는 세정용 특수가스다. 눈이나 피부에 접촉될 경우 화상을 입을 수 있고 흡입 시 두통이나 구토, 호흡곤란,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고를 일으킨 삼불화질소는 이 업체에서 주로 생산하는 물질이지만 이 앱에서는 취급물질로 확인되지 않는다. 영업비밀을 우선시하는 기업과 관련 정보 공개에 적극적이지 않은 정부로 인해 이 앱에는 전체 화학물질 사용량 정보 가운데 불과 20%만 담겼기 때문이다. 화학물질들은 주로 공기 중으로 배출됐지만 환경부는 열처리 등을 거쳤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화학단지를 마주하고 있는 울산 주민들의 불안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울산 화학공단은 거대한 화약고다. 몇년 전부터 가스폭발 사고가 계속 나는데 이러다 진짜 대형 사고가 터지는 거 아닌지 겁이 난다.” 울산에 사는 직장인 이아무개(32)씨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거듭 우려를 표했다. 최근 2년 새 울산에서만 크고 작은 유해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 사고가 10여 차례나 있었던 탓이다. 이씨는 “아이가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인근 울주군이나 경주로 이사를 가려고 알아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3일 사고를 보고 나도 이사를 가야 하나 처음으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공장 부근에서 원룸 임대업을 하는 ㅇ(59)씨도 정든 고향이 이젠 무섭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 사는 자식들이 휴가 때 내려온다는 걸 사고 날까봐 오지 말라고 했다. 울산에 공장이 많아서 돈도 잘 돌고 살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국 (사고) 위험의 대가인 셈”이라고 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화학공단이 조성돼 있는 울산이 불안에 떨고 있다.
울산에서 유독 화학물질 사고가 빈번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일 도시로는 전국 최대의 화학물질 취급 지역(2014년 기준 3897만6000t)이라는 점과 △국가산업단지라 지자체에 안전 관리·감독권이 없는 점 △30~40년이 된 노후 설비가 대부분인 석유화학 사업장에서 생산이 이뤄지는 점 등을 꼽는다.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의 현재순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화학 사고의 원인 가운데 정부 통계로 30~40%가 노후설비에 의한 사고인데 관리 주체가 사업주라 비용 문제를 들어 관리를 게을리하기 쉬운 구조”라며 “공공시설물 안전관리특별법처럼 위험한 산업시설에 대한 관리를 정부가 직접 하는 내용의 특별법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안전관리 등의 업무를 외주화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산업보건학계의 권위자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60) 교수는 “환기시설과 유지·보수 등 안전점검 업무 전반을 외주화하면서 관리자가 수시로 변경되는데다, 원청 기업이 관리감독을 낮은 단가로 하청에 위임하다 보니 사업장에서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법조계에서는 기업들의 산업안전 위해 행위를 근절하는 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등이 실효성이 없다고 설명한다. 원청에 책임을 묻기보다 해당 사업장의 안전관리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그치거나, 원청 법인에 대해 처벌을 하더라도 벌금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해 협력업체 노동자 6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한화케미칼에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반면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뒤 산업안전 위해 행위에 대한 벌금 상한선을 폐지해 기업의 1년 총매출액의 5~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악의적인 경우에는 10% 이상도 선고할 수 있다. 2008년 안전 관련 불법 행위가 드러난 사업장 121개에 각 10만달러(약 1억1100만원)의 벌금을 내린 미국은,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노동자보호법안’에서 산업안전 관련 사망 사고에 대해 10~20년의 징역형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 등 기업 사용 화학물질 90% 공개”
울산 지역 외에도 전국적으로 화학물질 사고 발생 건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정부 자료를 보면, 2010년 15건에 불과했던 화학 사고 발생은 2013년 86건, 2014년 104건, 2015년 111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5월까지 42건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1일,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 300여곳을 대상으로 불시감독을 8~9월 동안 집중 실시한다고 밝혔다. 사업장의 평상시 안전보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예고 없이 불시에 실시하는 이번 감독은 6가크롬, 니켈, 납, 삼산화안티몬 등 고독성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이 우선 감독 대상이다. 노동부는 위법 사항을 적발하면 즉시 사법처리, 과태료 부과 등 강력 조처하고 화학물질 누출, 화재 등 위험 작업장소 등에는 작업중지 명령 등 엄정한 행정조처를 병행할 방침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일터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와 함께 주민들의 알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거주지 주변의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공장과 물질을 알려주는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이 소중한 이유다. 이 앱은 한겨레신문사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국내에서 제공되고 있는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서비스를 대상으로 사용자들의 소망과 사회적 가치를 담아낸 기술을 선정해 수여하는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HTA)에서 올해 사회·공공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구미 불산 누출 사태를 계기로 27개 노동·환경·보건·여성단체들이 2014년 결성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가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국민 안전보다 기업 이익과 비밀을 우선시하는 관행에 맞서 2년여에 걸친 ‘화학물질 정보공개 청구운동’으로 제한적이나마 공개된 정보를 통해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려 위험물질에 대한 사회적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알리는 구실을 하고 있다.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추가로 확보된 화학물질 사용정보와 어린이 용품 및 화장품 등 일상생활 속 유해물질 관련 내용 등을 업데이트해 2.0버전을 곧 공개할 예정이다.
현 사무국장은 “유해화학물질 관리는 결국 주민들의 알권리가 얼마나 보장되느냐의 문제다. 알아야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되어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의 경우는 지역사회알권리법과 조례가 있어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90% 이상이 공개된다”고 했다. 또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 이후 몇백건의 화학물질 사고 중 단 1건도 주민에게 통보한 사실이 없었다. 법적 의무가 누구에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서 지자체장의 주민에 대한 고지의무 조항이 빠진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개정에서 나아가 지난 2014년 은수미 의원이 발의했다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된 ‘지역사회알권리법’의 제정이 과제로 남게 됐다.
2014년 한 해 동안 화학, 석유정제, 1차 금속 등 전국 3524개 사업장에서 사용된 226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의 총량은 1억6361만8000t에 달한다. 환경부 산하 화학물질안전원(안전원)이 지난달 6일 발표한 ‘2014년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 결과’를 보면, 2014년 한 해 동안 전국 공장들에서 211종 5만4261t(전체 취급량의 0.0332%)의 유해화학물질이 대기 등 환경으로 배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벤젠 등 주요 발암물질 12종의 경우 전년보다 12.9% 많은 1064t이 대기 중으로 배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1억t의 화학물질은 어디로 사라졌나?
이러한 배출량 증가는 같은 기간 전국 공장들의 발암물질 취급량이 2만299t에서 1만9693t으로 3%가량 감소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발암물질 등 유해화학물질 배출량을 줄이려는 환경부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또한 중금속과 유독물질을 포함한 조사 대상 415개 전체 화학물질의 2014년 환경 중 배출량도 5만4261t으로 전년 대비 6.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별로 보면 반복 노출 시 백혈구 수가 감소하는 유독물질인 자일렌이 1만7660t, 인화성 생식독성(2세 기형) 의심 물질인 톨루엔이 8537t, 고농도 흡입 시 폐손상을 일으키는 인화성 물질인 아세트산 에틸이 4221t, 발암의심물질인 에틸벤젠도 2821t이 대기 등으로 배출됐다. 대기 속 배출량을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1만1734t으로 가장 많았고 경남이 8813t으로 뒤를 이었다. 단일 도시로는 울산이 8556t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안전원이 유해화학물질 종류에 따라 1t 또는 10t 이상 취급하는 사업장에 대해 해마다 실시하는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 결과 2014년에는 전체 취급량의 0.0038%인 6만2000t만이 대기 등으로 배출된 것으로 나온다. 위탁 처리된 87만3000t(0.533%)을 제외하면 99.4%에 이르는 화학물질이 공정 중 소멸되거나 제품화됐다고 안전원은 밝혔다.
사업장 굴뚝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을 24시간 실시간 원격으로 감시하는 한국환경공단 시스템인 티엠에스(TMS·Tele Monitoring System)의 측정 대상 물질은 사업장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먼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염화수소 등 4가지가 대부분이다. 특히 수백종의 유해화학물질을 다량으로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에 설치된 티엠에스에선 염화수소만 모니터된다. 다른 화학물질은 굴뚝으로 배출돼도 측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99.4%에 이르는 화학물질은 굴뚝으로 사라졌을까?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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