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텔' 에어버스 A380, 14년 만에 불명예 퇴출된다
박현영 입력 2019.02.17. 06:01
초대형 여객기 A380 2021년 생산 중단 발표
보잉 747 대항마로 개발, 14년 만에 생 마감
올해로 50년된 B747과 비교하면 전략 실패
금융위기 때 출시, 보잉 추격 전략 실패
500석 채우기 버겁고, 회전율 낮아
허브 공항 대신 소도시간 연결 선호
저비용 항공사 인기 급증, 전망 어긋나
글로벌 경제 Why
한 번에 승객을 최대 800여명 실어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여객기, 2층 구조에 바(bar)와 스위트룸까지 둘 수 있어 ‘하늘 위 호텔’로 불린 에어버스의 A380 여객기가 불명예 조기 퇴역한다.
유럽 최대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는 2021년을 끝으로 A380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14일(현지시간) 밝혔다. 총 250억 유로(약 32조원)를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2007년 첫 상업 비행 후 14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A380 프로젝트는 장거리용 초대형 항공기 시장을 지배한 미국 보잉의 B747에 도전하기 위한 에어버스의 야심이었다. B747이 50년째 운항 중인 점과 비교하면 A380을 14년 만에 접는 것은 ‘실패’라고 부를 수 있는 결과다.
장기 계획과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 A380 프로젝트가 기대를 저버리고 단명하게 된 이유는 뭘까.
첫째는 불운한 탄생 시점이다. A380 프로젝트 구상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 에어버스는 새로운 장거리 항공기 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2000년 개발에 들어갔다.
배선 장치 등 기술적 문제로 첫 비행이 2년 미뤄진 끝에 2007년 10월 싱가포르항공이 A380을 처음 하늘에 띄웠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다. 기업과 개인 모두 긴축으로 돌아서면서 세계 여행 수요는 급감했다. 항공사들은 초대형 여객기가 꼭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문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당초 구매를 약속한 항공사의 구매 취소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고객은 두바이공항을 거점으로 둔 에미레이트항공이었다. 지금까지 생산된 A380은 총 232대.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09대를 에미레이트 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A380의 '호흡기'를 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최대 후원자'인 에미레이트항공이다.
이 항공사는 당초 162대 구매를 약속했는데, 최근 주문량을 123대로 줄였다. 에미레이트항공의 변심으로 A380 수주 잔고 53대 가운데 39대가 취소됐다.
에어버스는 A380 14대를 2021년까지 출고하고 나면 수주 잔고가 ‘0’이 돼 생산이 자동으로 중단된다. 플래그십 기종의 운명이 한 항공사의 손에 맡겨진 셈이다.
A380은 연간 40대 이상 제작이 목표였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2012~2014년 연간 30대 제작이 최고치였다. 지난해에는 12대를 생산했다.
둘째는 시장 선두업체를 추격해야 하는 2등으로서 ‘패스트 팔로어’ 전략 실패를 꼽을 수 있다. A380은 초대형 여객기 시장을 독식하고 있던 ‘라이벌’ B747 여객기의 대항마로 제작됐다. B747은 지금까지 50년간 총 1500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에어버스는 A320 같은 소형 기종 시장을 꽉 잡고 있었지만, 장거리 초대형 기종에서는 보잉이 압도적이었다. 미국을 상징하는 보잉과 유럽의 상징인 에어버스의 대결 구도에서 에어버스가 초대형기 기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A380을 개발하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A380은 항공기 그 이상이었다. 유럽 협력의 상징이자 산업적 야심의 표상이었다”고 평가했다. A380 날개는 영국, 부품은 프랑스ㆍ독일, 기체는 프랑스 툴루즈, 도색 등 마무리 작업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진행됐다.
B747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공간과 럭셔리를 내세워 보잉의 질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더 크고, 더 럭셔리한 데 집중한 전략은 고객인 항공사들에 제대로 소구하지 못했다.
A380은 최고 800여명 승객을 수송할 수 있지만, 보통은 항공사 요청으로 내부를 500여석으로 설계했다.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려면 좌석을 꽉 채워 운행해야 하는데, 항공사 입장에선 500석을 판매하는 게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좌석을 들어낸 자리엔 바와 스위트룸을 만들었다. 초대형 항공기는 배치할 수 있는 노선이 한정적이어서 운영 효율성 또한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좌석당 운영 비용은 A380 같은 초대형 여객기보다 B787 드림라이너 등 최신 기종이 훨씬 적게 든다"며 "최근 10여년 사이에 여객기 시장이 확 바뀌었다"고 전했다.
셋째는 미래 시장을 잘못 읽은 탓이다. 에어버스는 국제 여행 수요가 큰 폭으로 늘면 지역 거점인 허브 공항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허브 공항 혼잡도가 높아지면 초대형 항공기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은 일부 맞았다. 중동의 허브인 두바이공항을 거점으로 한 에미리트공항이 A380을 109대나 운영하는 큰 손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싱가포르항공(19대), 루프트한자(14대), 영국항공ㆍ콴타스항공(12대), 대한항공ㆍ에어프랑스(10대), 아시아나항공(6대) 등도 A380을 들였지만, 소량에 그쳤다.
전망의 큰 부분은 어긋났다. 런던 히스로공항과 같이 혼잡한 공항은 A380의 존재가 반가웠지만, 에어버스의 예측과 달리 대부분 공항에서는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공항을 새로 만들거나 확장·증설하는 경우가 많았고, 허브 공항에서 환승하는 대신 소도시와 소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항공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저비용 항공사가 획기적으로 늘어 항공 산업의 중요한 축이 됐다.
에어버스는 공항이 혼잡해지면 공항 당국이 항공사들에 초대형 항공기 도입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기대와 달리 시장은 반대로 흘러간 것이다.
B777과 그보다 작은 B787 드림라이너, A350과 A330 네오 같은 트윈 엔진 소형 여객기 인기가 더 올라갔다. 초경량 탄소섬유 기체와 효율 높은 엔진으로 획기적으로 연료 비용을 절감하고, 소도시와 소도시를 연결로 회전율이 높아 경제성이 좋기 때문이다.
보잉의 행보는 에어버스와 달랐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보잉은 미래 항공 여객 시장은 허브 공항을 거치지 않고 소도시와 소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장거리 여객기도 소형화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고 B777, B787 드림라이너 등을 개발했다.
결국 A380이든 B747이든 초대형 항공기의 생존이 어려워졌다. WSJ은 보잉도 B747 생산을 2022년께 중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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