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편하게 만드니 생각도 젊어지네 | |
한국 10대 기업 ‘겉과 속’ ⑩ 씨제이
|
서울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씨제이그룹 사옥 4층 회의실 여섯 곳 가운데 두 곳은 특이하다. 의자가 하나도 없고 허리 조금 위쪽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넓은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간결하면서도 성과있는 회의가 되도록 서서 하는 회의를 하자”는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7월에 시범적으로 의자 없는 회의실을 도입한 것이다. 밀가루·설탕 등을 판매하는 소재BU(비즈니스 유닛) 영업 담당 이상훈(32) 대리는 “이처럼 엉뚱해 보이는 의견도 받아들일 줄 아는 조직이 바로 씨제이”라고 말했다.
이는 씨제이가 표방하는 인재상의 요소들과도 맥이 통한다. 씨제이의 인재상은 ‘유연하면서 생각이 열려 있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씨제이 사람들은 누구나 ‘능동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젊고 유연한 조직’이라는 점을 회사 강점으로 내세운다.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999년 자율복장제를 도입한 데 이어, 2000년엔 모든 임직원의 호칭을 직위 대신 ‘님’으로 통일하도록 했다. ‘님’ 호칭 제도는 직위에 따른 수직적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데 한몫했다. 업무를 유연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각 부서의 자체 협의로 결정하는 ‘플렉서블 타임제’도 도입했다.
자율복장·수평적 문화…“느슨해졌다” 지적도
과장 이상 간부 6%인 여성 다양한 업무 맡아
신선BU의 두부 마케팅 담당 한정엽(37) 과장은 “사장, 부장 호칭 대신 모두 ‘○○○님’으로 부르면서 자유롭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식품업체에서 시작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유통 등을 아우르는 생활문화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이런 조직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사먹는 밥’이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햇반’을 비롯해 숙취 해소음료 시장을 개척한 ‘컨디션’, 다이어트 음료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팻 다운’ 등도 창의적이고 유연한 문화가 탄생 배경이 됐다.
그렇다고 씨제이 특유의 유연 문화가 긍정적 구실만 하는 건 아닌 듯하다. 한 임원은 “조직 운용이나 업무 처리에서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가 필요할 때가 있다”며 “‘님’ 호칭 제도가 필요한 권위마저 가벼이 여기는 풍토를 만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자율을 강조하다 보니 조직이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씨제이 출신의 한 기업 임원은 “씨제이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다른 회사로 옮기고 보니 씨제이의 조직·업무 관리가 치밀하지 못하고 느슨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야심차게 추진한 ‘플렉서블 타임제’도 최근 사실상 폐지했다.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지 1년 이내 여성에 한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인사팀 이종기 부장은 “아침 시간 자기계발 활동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출퇴근 시간을 개인별로 조정할 수 있게 했는데, 적극적으로 자기계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플렉서블 타임제’ 개선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씨제이는 여성인력 운용 면에서 다른 기업에 비해 앞서 있는 편이다. 전체 과장급 이상 간부 1125명 중 여성이 66명으로 5.8%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에서 아주 높은 수준이다. 신입사원 채용 때 여성의 지원이 늘고 있어 올해 신입사원 교육을 받고 있는 59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28명이 여성이다. 회사는 여성 인력이 늘어남에 따라 내년 5월 개원 목표로 직장 보육시설도 추진하고 있다. 식품연구소 신혜원(36) 부장은 “그룹 차원에서 2013년까지 과장 이상 간부 가운데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해 여직원들에게 더욱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관리팀 위은숙(33) 과장은 “식품회사라 주구매층이 주부이기 때문에 여직원들의 업무 영역이 다른 회사에 비해 넓게 주어지고 있다”고 했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본류에서 벗어난 지원 업무만 맡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더라고요. 우리 회사는 여성들에게도 다양한 업무를 맡기고 경력 관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씨제이는 지주회사체제 전환에 따라 오는 9월 사업회사로 분할되는 ‘씨제이제일제당’의 2013년 매출액을 10조원으로 잡고 있다. 이 가운데 50% 이상을 국외시장에서 올린다는 계획 아래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미국, 독일, 중국, 베트남, 인도 등 주요 지역 전문가를 발굴하기 위해 시행하는 ‘글로벌 포스트’제가 대표적이다. 인사팀장 정태영 상무는 “‘글로벌 포스트제’에 따라 해마다 5~6명씩 외국에 파견돼 시장조사, 사업화 가능성 등을 파악해 보고한다”며 “보고서 내용이 뛰어나면 주재원으로 근무할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끝〉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
'비지니스 정보 > 기업경영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소경쟁력’ 미래 기업 성공의 조건 (0) | 2008.11.03 |
---|---|
대기업들 “최소 내년말까지 위기” (0) | 2008.11.03 |
'08~'09 미국의 산업별 경기 전망 (0) | 2008.10.30 |
M & A의 성공조건 (0) | 2008.10.30 |
한국 10대 기업 ‘겉과 속’ ② 현대자동차 (0) | 2008.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