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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여, 실력을 보여라…"

성공을 도와주기 2009. 5. 17. 07:47

진보여, 실력을 보여라…"호남은 아파트도 달라야

 

지난 번에 위기의 경제학에 대해서 논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이야기를 조금 하고자 한다. 아울러 요즈음 진보의 진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데 필자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니 그것도 좀 다루기로 하자.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경제학자로 민스키(Hyman Minsky)를 들 수 있다. 이른바 민스키의 금융불안정가설이 사전에 정확하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예측했다고 보도됐기 때문이다.

민스키는 자본주의의 금융시장이 근본적으로 불안정함을 주장했는데 그 핵심은 부채의 증가에 있다. 그는 3종류의 채무자를 구분했는데, 수입으로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헤지 채무자(hedge borrower), 수입으로 이자는 갚을 수 있지만 원금은 갚을 수 없어 만기가 되면 다시 빌려야 하는 투기 채무자(speculative borrower), 수입으로 이자도 갚을 수 없어 다시 빚을 내서 빚을 갚는 폰지 채무자(Ponzi borrower)로 명명했다. 폰지는 1920년 미국에서 피라미드형으로 투자가를 모집한 희대의 사기꾼이며, 그 이후 이런 방식의 사기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다.

민스키는 호황시에 투기채무자와 폰지채무자가 늘어나게 되는데, 호황이 길수록 이런 채무자가 늘어나 금융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민스키의 복잡한 이론에 대해서는 이번 사회경제학회에서 발표된 이 분야 전문가인 조복현교수의 논문(세계 금융위기와 케인스-민스키의 새로운 해석)을 참조할 수 있는데, 복잡한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명확하다.

한 경제 내에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 돈을 빌리는 기업이나 가계가 늘어날 수록 경제는 위험해 진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는데 굳이 복잡한 경제이론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제위기는 과다한 부채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재벌의 부채 때문에 발생했고, 미국의 금융위기는 과다한 주택담보대출과 투자은행의 부채비율이 높아서 발생했다.

몇 년 전부터 필자가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를 통해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대출을 허용하라고 강력히 주장한 것도 민스키의 기준에 따르면 헷지 채무자에게만 돈을 빌려주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주택가격이 소득에 비해 너무 높기 때문에 이 규제를 하면 대출은 거의 전면 중단된다. 부동산 폭락을 감당할 수 없는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부채가 급증하게 되었다.

위험수위에 달한 한국의 가계부채

2008년 말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800조원에 달한다. 금융기관의 가계부채를 집계한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통계에는 700조원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지만, 자영업자를 포함한 자금순환표 상의 가계부채는 800조원이다. 이를 가계의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가계의 금융부채/가처분소득 배율은 1.4배이다.

이 수준을 외국과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 최근 발간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는 금융부채/가처분소득 배율이 1.4라고 밝히고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는 금융부채/명목GDP을 사용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전 보고서에서는 금융부채/가처분소득 배율을 비교한 적이 있다.

금융부채/가처분소득 배율로 따지면 한국은 이미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을 앞서고 있다. 앞의 그림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한국의 배율이 커지는데, 그 이유는 한국은 GDP 대비 가처분소득이 55%정도에 불과한데 미국은 75%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GDP성장률에 더해 가처분소득 증가율도 보아야 경제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채의 상환능력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가처분소득을 써야한다. 그런데 왜 한국은행은 지난 번까지 제대로 잘 하다가, 새 보고서에서는 명목 GDP를 썼을까? (세상이 하수상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아무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는 6개 시중은행 보고서를 이용하여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연간소득 대비 이자지급액이 13.5%에 달하고, 원금상환액까지 포함하면 20.1%에 달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가계는 그런대로 형편이 괜찮은 가계들인데 이 가계들이 소득에서 이자로 13.5%나 지불하고 있고, 원금은 겨우 6.6%만 상환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이자율이 더 높은 제2금융권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나쁠 것이다. 그러니까 민스키의 구분을 따르자면 한국의 가계들은 소득에서 원금을 거의 갚지 않고 있는 투기채무자나 폰지채무자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보정부'의 폭탄돌리기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 곧 대규모 가계부실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현 정부처럼 끝없이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 전략이 성공하여 거품이 지속되면 가계는 빚 갚기에 허덕이게 되어 한국경제는 장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다. 결국 한국경제는 가계부채로 인해 붕괴될 것인데, 단지 그 속도가 문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품을 더 일으키려고 혈안이 된 정부를 맞게 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실 현재의 상황은 2004년의 재현일 뿐이다. 2003년 10.29선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공개념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고, 대통령의 저돌적 성격에 겁먹은 시장은 즉각 얼어붙었다. 그러자 이른바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서서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바람을 잡기 시작했고, 때마침 대통령은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임명했다. 부동산 투기의 대가인 그를 이 시기에 임명한 뜻은 무엇이었겠는가? 노무현 정부에서의 망국적 부동산 투기 붐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에서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가계부채는 2000년 이후 매년 20% 이상 증가했고, 2004년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도 10% 대의 증가율을 유지해 왔다. 결국 가계부채를 늘려 한국경제를 수렁에 몰아넣은 것은 진보개혁정부를 자칭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였다. 경제관료들이 내수를 살려야 한다며 가계부채 늘리는 것을 그대로 방조한 결과였다. 800조원의 가계부채를 해소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국경제의 파국은 필연적이다.

진보는 아파트 하나도 다르게 짓는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과거정부에 비해 많은 진보개혁적 정책을 추진한 것은 분명하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결국 빚내서 소비하고 집사는 내수와 건설경기 부양에 의존했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역시 지역의 건설경기 부양에 불과했다. 진보개혁정부랍시고 뽑아놨더니 결국 똑같이 개발할 것이라면, 원조 개발전문가 한나라당과 MB가 훨씬 낫지 않겠는가?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기에 앞서 진정한 진보정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고려해 보면 진보진영은 신뢰하기 어렵다. 노무현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이를 많이 낳으셔도 됩니다 제가 키워드리겠습니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공약이야말로 진보의 최고의 가치를 건 핵심적 공약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 과연 국가를 믿고 아이를 낳아도 될 정도인가?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아무리 복지를 강화했다고 주장해도 국민들에게는 피부로 와 닿지 않을 뿐이다.

진보의 급선무는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신뢰했던 상대로부터 배신당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언어의 유희로는 이제 부족하다. 실제로 진보가 보수와 무엇이 다른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진보가 정권을 다시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의외로 빨리 진보에게 기회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신뢰회복 없는 집권은 진보진영과 한국경제에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고 감히 예단한다.

호남 지자체는 달라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민주당이 진보정당이라면 현재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호남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진보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호남에서 다른 지역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가? 민주당은 호남개발당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공분수에 불과한 청계천을 복사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앞세우고 진보를 표방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잉어가 뛰어노는 양재천 모델이 진보가 추구해야 할 하천개발이 아니던가?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또 다른 비행장이나 비용대비 수익이 나지 않는 고속철이나 서남해안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보수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진보는 아파트를 하나 지어도 달라야 한다. 건설족에 휘둘려 비싸고, 비인간적 성냥갑 아파트 짓기를 거부하고, 호남 지역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더불어 살기에 최적인 생태 친화적인 공간임을 보여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설계와 시공감리를 분리해서 경쟁 입찰하면 전국 최저가에 최고의 아파트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토호나 건설족과 결연히 단절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그런 정도의 개혁도 하지 못하면서, 아파트값 잡겠다고 공약을 내세울 때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호남이 진정 진보의 교두보가 되기 위해서는 호남을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걱정하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하고, 기업의 이주가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를 위해 수없이 많은 실험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을 추구한다면 진보적 청사진을 제공하는 일꾼을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공천하고, 그런 일꾼들이 여기저기서 새롭고 진보적인 도시와 농촌의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들은 안심하고 진보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 진보의 집권은 또 다른 무모한 실험에 불과할 것이고, 그런 실험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제 잘 알고 있다.

김상곤교육감의 쇼를 기대한다

바로 그런 진보의 참모습을 보여줄 대표주자가 김상곤 교육감이다. 진보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은 진보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구의 선진국이 모두 추구하는 진보 교육의 참모습을 보여 MB교육이 엉터리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은 진보진영 전체의 책무이다. 김 교육감으로 인해 경기교육이 진보진영과 한국교육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전쟁터가 되었다. 진보진영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내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진보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진보가 지향하는 숭고한 가치에 있다. 그것은 '모두 함께 잘사는 것'이고, 교육은 바로 그런 신념을 실천하는 일꾼을 길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교육의 지고지선의 목표는 '더불어 사는 교육'에 있다. 학생들을 외우는 기계로 만드는 MB교육 대신, '능력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합심해서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을 정립해야 한다.

따라서 진보교육의 진정한 힘은 왕따, 학교폭력, 촌지의 근절부터 시작된다. MB가 '누가 더 잘 외우는가'로 학교를 평가하면, 진보교육감은 '누가 더 잘 배려하는가'로 학교를 평가해야 한다. 왕따와 학교폭력, 촌지가 싫어 자퇴하는 학생 수로 평가해야 한다. 왕따를 당한 어린이에게 수십명의 수호천사를 붙여 주고, 폭력서클 학생들에게는 끈임없는 상담과 무도교육등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 경기도에는 학교가기를 싫어하는 학생이 없도록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왜 그런 학교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세계 최고의 핀란드 교육이 단순히 돈을 많이 들여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육 당국과 교사가 함께 합심해서 만든 학교문화의 결실일 뿐이다.

진보교육은 운동경기를 하나 해도 다르다. 잘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이기는 것만 강조하는 운동경기가 아니라, 못하는 사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경기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못하는 사람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을 교체해서 못하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운동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진보교육의 모습이다. 찬조금도 없애고 예체능계의 비리도 없애야 한다. 모든 학교마다 예체능 교실이 있어서 누구나 원하는 예술체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진보교육이 학업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교육은 교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공교육이 정상화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교육청에 가능한 모든 예산을 총동원하여 교사의 훈련과 지원에 쏟아부어야 한다. 1년 2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충분히 가시적 성과를 보일 수 있다.

작은 실험에서 성공을 거둘 때, 국민들은 진보의 힘을 믿게 될 것이다. 진보진영에 대한 냉엄한 시험대가 앞에 놓여있음을 직시해야 할 때다.

 

출처: 프레시안 뉴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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