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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왜 인문학에 집착하나?

성공을 도와주기 2010. 10. 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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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 ‘순수를 꿈꾸며(Auguries of Innocence)’의 첫 구절이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현상이도 거기에 세계의 본질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의미다.

 

블레이크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대를 연 시인이자 화가였다. 그는 양말제조업자의 다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15살 때부터 판각 화가 밑에서 일을 배웠다.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로 산업혁명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블레이크는 18세기를 지배했던 합리주의와 물질주의 철학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그 시대의 관습이나 종교, 이성이 만들어낸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찾고자 했다.

그의 시는 매우 독창적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외면당했다. 오히려 외곬이고 비세속적이라는 이유로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블레이크는 사람들이 자신을 “괴짜, 기인으로 부른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블레이크는 시인뿐만 아니라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시집에 삽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수수께끼처럼 파격적인 화풍으로 신비롭고 복잡한 상징성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그는 다른 위대한 예술가처럼 앞서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세상은 그를 따라 오지 못했다. 그의 그림 역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그가 재평가 받은 것은 그가 죽고 나서였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기존 가치를 부정하는 히피와 비트 제너레이션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 전쟁, 흑인 인권, 페미니즘 등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자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환멸을 느끼고 변화와 혁명을 꿈꾸게 된다. 블레이크는 그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파괴적이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록그룹 도어스(The Doors)는 블레이크의 시 구절을 인용해 그들의 밴드 이름을 지었다. 바로 ‘지각의 문들이 깨끗이 닦이면 모든 것이 무한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all things would appear infinite.)’

‘포크록의 전설’ 밥 딜런 역시 블레이크가 쓴 편지 글귀를 인용해 ‘소중한 천사’(Precious Angel)‘라는 노래의 가사를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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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는 편지 글에서 ‘나의 편이 아닌 사람은 나의 적이다. 중간이나 중용은 있을 수 없다.(He who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There is no medium or middle state.)’라고 썼다.

딜런은 소중한 천사에서 ‘당신이 신앙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신앙이 없는 것이다. 중립적인 위치는 있을 수 없다.(You either got faith or you got unbelief. And there ain't no neutral ground)’라는 가사를 지었다.

 

  블레이크가 보여주려 했던 세계는 그가 살았던 시대 보다 훨씬 더 지난 오늘날에 더 와 맞아떨어진 듯하다. 그는 ‘검둥이 소년’이라는 시에서 인간은 평등하고 만인은 모두 사랑의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인종차별이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시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 구절 가운데 “내 영혼은 희다”는 흑인 소년은 지금도 짠한 느낌을 주고 있다. 블레이크는 ‘병든 장미꽃’에서 육욕적인 불량한 남자를 장미(여자)를 괴롭히는 벌레로 은유해 남성의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화풍, 문학적 상징성, 미술과 디자인의 결합은 블레이크가 남긴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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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그의 독특한 세계를 미술계에서 인정하지 않았지만 현대에 와서 유럽 대륙과 차별화하는 영국 미술의 독특한 흐름을 예고한 위대한 화가로 재평가 받고 있다. 동적인 디자인과 불타는 느낌의 색깔로 된 그의 삽화 시집은 세계적으로 진귀한 예술품에 속한다.

 

심리학에서도 블레이크가 등장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자신이 만든 여덟 개의 심리 유형 가운데 블레이크를 ‘내향적 직관유형(Introvert Intuition)’으로 정리했다. 내향적 직관유형은 내적인 목소리를 중요하는 몽상가이자 비상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남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천재들이다.

 

괴짜, 통찰력, 직관, 결합…

이쯤 되면 연상되는 이가 있다. 그렇다. 스티브 잡스다.

사실 잡스는 블레이크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막힐 때마다 블레이크의 시집을 펼친다. 문학적 영감이 잡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몇 해 전 <뉴욕타임스>는 훗날 역사가들이 아이폰 발명을 블레이크의 시와 연관 지어 설명할지도 모른다고 전할 정도였다.

 

시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IT기업의 CEO가 왜 시인에 쏠렸을까? IT기업은 기술을 앞세워 경쟁하지만 경쟁력의 원천이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시, 바로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의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라는 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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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27일 아이패드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이다. 잡스가 애플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뒤에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 비쳤다. 그러나 길 이름이 독특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다."

 

잡스는 애플을 기술업체라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니즈에 맞게 쉽게 사용 가능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인 시각이다. 인문학에 몰입할수록 비즈니스 통찰력도 업그레이드된다. 잡스가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이런 인문학적 관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잡스뿐만 아니다. 독서광인 빌 게이츠도 “인문학 없이는 나도 컴퓨터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성공한 CEO들의 비결은 다름 아닌 서재에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 신문이 분석한 CEO들의 큰 특징은 경쟁 관련 주제보다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잡스가 인문학을 만나게 된 것은 그가 한 학기만 다니다 중퇴한 리드칼리지에서였다. 그 학교는 당대 최고의 필기체 강좌가 있었다. 캠퍼스 곳곳에 붙은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마다 정말 아름다운 필체로 적혀 있었다. 자퇴한 잡스는 정규 강의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서체 강좌를 수강해서 이것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삐침이 있는 글꼴과 없는 글꼴을 배웠고, 서로 다른 문자들을 조합하면서 자간을 조절하는 법도 배웠다. 좋은 글꼴의 조건도 배워나갔다. 거기에는 아름다움과 역사와 예술적 섬세함이 과학이 매료시키지 못할 방식으로 배어 있었다. 잡스는 그것에 매혹되었다.

 

잡스 스스로도 그렇게 배운 것이 자신의 인생에 실제 활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10년 뒤 잡스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맥의 디자인에 포함시켰다. 맥은 아름다운 글꼴을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다. 그가 대학에서 그 강의를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그렇게 다양한 글꼴을 지닌 서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쓰는 다양한 서체도 만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리드칼리지는 아이비리그는 아니지만 방과 후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대학 1위로 뽑힌 학교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유명한 매사추세츠 공대(MIT)도 철학, 언어학, 문학, 예술과 같은 인문학 과목을 학생들이 수강하도록 하고 있다. 석유 재벌인 존 록펠러가 세운 시카고대는 실용 학문보다 순수 학문에 초점을 둔다. 학생들이 교양과목을 공부하도록 하는 ‘리버럴 아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미국 대학이 '리버럴 아츠'라는 이름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문학은 세월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인류의 지혜의 창고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하지만, 인문학이 보여주는 비판정신, 소통의지, 윤리의식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비판정신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창의력을 낳는다. 인문학의 윤리의식은 동반성장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져오게 해준다.

 

'한 가지 더(one more thing)'

물론 두 사람 역시 차이점은 있다. 블레이크는 칠십 평생을 가난한 예술가로 살다 죽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렇듯 시대를 앞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스무 살에 이미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현재까지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물론 잡스 역시 한때는 회사에서 쫓겨났고 언론의 조롱을 받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