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코타 산의 교훈-(후편)
장교와 사병
여정이 길어 3일 먼저 출발한 도쿠시마 행군 소대는 부대를 출발할 때 각자 대위로부터 연구 과제를 부여 받았다. 과제들로서는 기상자료를 수집하는 역할, 적설지역에서의 행진법, 눈길 형태의 측정, 한랭 속의 피로도 연구, 동상예방법과 조치법의 연구, 장비 연구, 휴대식품의 연구, 적설지의 숙영법 등 여러 가지의 기능별 과제가 할당되었다.
심지어 나팔수는 영하 이삼십 도에서 어떻게 나팔을 잘 불 수 있는가 하는 과제를 부여 받기도 했다. 군대로서의 분대형태는 사라지고 오직 연구조원으로만 구성한 셈이다.
짐은 되도록 가볍게 해서 공동의 짐이 없게 하고 식량은 가는 길에 민가에서 상당부분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짐을 가볍게 하였다. 중대장은 평소의 온화함은 사라지고 오직 긴장감의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가는 길이 비록 평지일지라도 반드시 안내인을 구해 앞장서게 했다. 부대는 안내인의 걸음속도에 맞추어 행진했기 때문에 군대 본연의 행군수칙은 없어지고 말았다.
도쿠시마는 어차피 완수해야 할 한 번의 혹독한 연습행군에 여러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전형적인 리더의 수행능력을 스스로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산행군이라는 목적에 합당한 내용만을 세밀하게 준비시켜 군더더기 없는 업무추진능력을 발휘한 것과 또 리더 스스로 긴장감을 보여주어 멤버들의 해이한 마음들을 사전에 차단한 점은 야마다 소령에 의해 지배당한 간다 대위의 행동과는 정반대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평소의 익숙한 방법론이 특수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필요 없다고 느낄 때 과감히 탈피해버리는 과단성도 갖추고 있었다. 평소의 행군수칙에 익숙한 소대원들은 속으로 불평을 하기도 했다.
사실 역사적인 모든 위대한 발명들과 업적들은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해방된 결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추운 눈보라 속에서 잠시 쉴 때는 하사관들이 대위를 둘러싸고 체온을 보호해 주고 나팔수는 소리가 퍼지는 가를 시험하기도 했다. 식량분석 팀은 가슴에 두른 식량의 온도를 점검해서 시간의 경과에 따른 동결정도를 조사하였다. 도쿠시마 대위는 허리만큼 쌓인 눈을 헤쳐 나갈 때 혹시라도 행렬에서 잡소리가 들리면 선두와 바꾸어 주어 힘들어서 소리도 내지 못하게끔 엄격하게 진두지휘를 했다. 행군에서의 잡담은 체력을 빼앗아 갈 뿐이다. 가다가 쓰러지면 피로도를 조사하고 동상증상도 관찰하였다. 병사가 물을 요구하면 절대 눈을 먹이지 않도록 했다. 눈을 먹으면 복통이 일어나고 몸속의 기온이 떨어져 동상에 걸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 격려차원에서 연대장이 각자의 수통에 채워준 술을 먹으면 잠시는 좋으나 금방 피로가 더해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주를 명령했다.
사냥꾼 출신의 안내원에게 선두를 맡긴 것을 보고 중위가 도쿠시마 대위에게 궁금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장교 즉, 리더는 그 사람(안내원)이 신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믿을수 있다고 보기에 맡겼다. 믿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을 실종시킨 것과 같다.’라는 대답으로 장교로서 우선해야 할 자격조건이 무엇인지를 단호하게 알려준 것이다.
지식경영은 리더의 기본 임무
이틀째의 행군에서는 하사관들에게 동상 방지를 위한 양말 겹쳐서 신기의 실험도 해가면서 전진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모두 각자가 맡아서 해왔던 이틀간의 연구 과제를 일차로 제출토록 했다. 도쿠시마 대위는 모아온 연구결과를 정리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추려냈다. 드디어 삼일 째가 되자 이틀간의 행군에서 발견하고 경험했던 새로운 지식들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보통사람들이 알기로는 지식경영이란 것이 최근에 미국으로부터 나온 것쯤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기존에 있어왔던 행동에 상표만 그럴듯한 말로 새로 붙인 것뿐이다. 일본군인들 조차도 백 년 전에 이미 지식경영이란 개념을 소대 단위에서 그것도 설산행군 이라는 아주 단기간의 실제 행동을 통해서 실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의 어느 의류업체가 도산의 위기에서 다시 되살아 난 이유가 지식경영 때문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그 상황을 벤치마킹 하겠다고 열심히 그 기업 문턱을 드나드는 한심한 기업들이 많은 모양이다.
지식경영은 특별한 이론과 행위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수행하는 평소의 활동과정 중에 동원된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일이 완료된 후 버리지 않고 주요 포인트를 기록하고 관찰해서 차기활동에 유용하게 이용하는 평범한 방법론이다.
현실에서 얻은 관찰결과를 공개적으로 자료화해서 가장 유익한 방법론이나 대책을 세워 조직원의 여러 활동에 확대 적용하게 하는 일련의 경험지식의 공유라고 보면 간단한 것인데, 그런 활동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 리더와 구성원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베낄 대상이 아니다. 지식의 단순보유가 지식경영이 아니고 그 지식이 적극 활용되어 품질이나 가격의 변동을 가져올 때 비로소 지식경영이라 부르는 것이다.
리더가 가져야 할 사고와 행동
도쿠시마 대위는 행군 5일째에 산골 마을에서 민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2미터 깊이의 눈 속에 설호를 파고 그 안에서 밤을 보내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핫코타 산의 행군 중에 만에 하나 정상부근에서 야영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설호를 파고 밤을 지내보는 연습을 행군과정에서 실시한 것이다. 소대원들은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도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병사들은 그저 묵묵히 도쿠시마의 의도를 따르고 있었다. 결국 이런 연습이 며칠 후에 핫코타 산 정상부근의 설원에서 악조건을 극복하는 계기가 된다.
험악한 길이나 평탄한 코스를 구분하지 않고 매일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행군하면서도 그날의 목적지인 산골 마을에 도착할 때면 반드시 안내원을 뒤로 가게하고 도쿠시마 대위가 다시 앞장서서 행군하는 형태를 반복했다. 부하들은 평탄한 길도 안내인을 세우고 마을에 다가가선 안내인을 뒤로 물리는 대위의 이런 행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도쿠시마 대위의 행동은 안내원의 역할은 길안내뿐이지 대열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니라는 안내원의 용도를 분명히 한 것이기에 안내원에 대한 인간적 무시는 결코 아니다. 또한 자기의 과시는 더욱 아니다. 신세 질 마을 주민들에게 군인다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 존경심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행동을 한 것이었고 행군의 책임자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 공개적으로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안내원을 활용한 것은 평탄한 길도 잘못들면 헤맬 수 있다는 일말의 위험에 대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하나의 행군훈련에 불과한 일에 목숨 걸고 할 필요가 없었고 가능하면 안전조건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손쉬운 조건이라고 긴장감 없이 우습게보다가 뜻하지 않는 실패를 자초하는 많은 리더들에게는 도쿠시마의 이런 철저함과 겸손이 의미가 있는 행동으로 비춰질 것이다.
긴장감 없는 리더와 집단의 종말
도쿠시마 대위가 이런 치밀한 계획과 실천으로 행군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인 1월 23일 아오모리의 5연대는 새벽에 출발대열을 세우고 있었다. 간다 대위는 아침 일찍 핫코타 산의 초입에 들러 안내인을 구하려 했으나 야마다 소령은 나침반과 지도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군인정신이라며 간다 대위의 계획을 묵살시켰다. 야마다 소령의 과신에 찬 단호한 표정을 보며 자기의 계획을 포기하고 만 간다 대위의 소극적인 행동에서부터 불행은 시작된 것이다.
중대의 출발을 알리는 호령을 야마다 소령이 외치자 간다 대위가 리더인 줄 알고 있었던 병사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상관하지 않았다. 누가 지휘하느냐는 사병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만 가면 되기 때문이다. 중대규모가 넘는 병력이기에 보급품도 상당히 많았다. 백 킬로그램씩 묶은 짐이 14대의 썰매에 담겨져 있었다. 도쿠시마 대위의 소대가 몸에만 지니고 간 보급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풍부한 자원의 확보가 승부수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핫코타 산을 직접 정면으로 등반하는 행군을 선택한 5연대의 행렬은 사람 수만큼이나 길었다. 대대의 연구팀으로 참가한 장교들 중에는 기상전문장교도 끼어있었다. 행군시간이 반나절 이상 지난 오후가 되면서 점차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것이 감지되자 간다 대위와 기상장교는 야마다 소령에게 훈련을 취소하고 되돌아 갈 것을 제안했다. 이 때 야마다 소령은 장교들과 하사관들을 함께 불러 모으는 임시회의를 소집했다. 고급간부를 대동한 군대의 지휘관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것이다.
소집된 회의에서 안전을 걱정하는 장교들의 발언보다는 군인정신을 주장하며 무모한 성취욕으로 무장한 하사관들의 선동적 발언에 고무된 야마다 소령은 진군명령을 내리면서 몸에 찬 일본도까지 빼서 휘두르는 흥분에 젖어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늘 냉정함을 잃지 말고 당황하지 않는 것보다 사람을 유리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보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리더십과 극히 대비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점심의 용도로 몸에 차고 온 주먹밥은 날씨가 추워 딱딱해져 씹기가 어려웠다. 주먹밥을 기름종이에 싸서 품속 깊숙이 넣어 보온을 해가면서 행군하는 도쿠시마 대위의 소대원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저 뒤따라오는 보급품만 믿고 또 산 정상에서 있을 온천욕의 기대감에 끼니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병사들이 많았다.
구름으로 햇빛이 사라진 후 시간이 지날수록 추위에 떠는 사병들의 모습도 보여 옷도 변변치 않게 준비한 것이 역력했다. 대열이 길다 보니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졌고 무거운 보급품의 썰매를 끄는 병사들은 산의 경사진 언덕을 오르기에 너무 지쳐있었다. 산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쌓인 눈의 두께는 높아만 가고 갑자기 시야를 가릴 정도의 돌풍이 많아져 부대원들은 길을 헤매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에 대한 통제는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더욱이 밤이 되자 보급썰매는 포기해야 했다. 가까이 있던 병사들끼리 산골짜기의 구릉에 각자 모여 설호를 파고 견디면서 기후가 좋아지길 기대 했으나 계속되는 눈보라 속에 추운 기온으로 인해 기능을 멈춘 나침반을 들고 이틀간 연속으로 길을 헤매다 결국 11명만 살아남고 208명은 눈 속에서 최후를 마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간다 대위는 혼란 속에서도 계속 야마다 소령의 명령을 받아 지시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성실함은 잘못된 대세의 상황 하에서는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한다.
결국 간다 대위는 눈보라 속에서 생존한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야마다 소령을 찾아 헤매다가 구조요청을 전할 전령을 산 아래로 보내고 난 후 지친 몸으로 책임감에 대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혀를 깨물고 자살하기에 이른다. 조난사실을 알게 된 연대본부의 수색대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야마다 소령은 병원으로 옮겨 회복을 기다리다가 결국 자책감에 자신의 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집단의 운명은 리더가 결정
11일간의 행군을 계획한 도쿠시마 대위는 행군 6일 쯤이 되는 25일에 반대방향에서 산을 넘어 온 간다 대위와 산본기 라는 읍내에서 조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5연대의 병력은 보이지가 않자 도쿠시마의 얼굴에 근심이 찾아 들었다. 혹시 조난사고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서둘러 핫코타 산으로의 행군을 명령하고 아주 심한 눈보라 속에서도 그 동안 단련이 되어온 병사들과 현지의 안내인들은 빠른 시간에 정상을 향해 전진했다.
중간에 잠깐씩의 휴식으로 피로를 푼 병사들을 데리고 야간행군을 강행하면서 드디어 정상을 넘어서 산 아래로 향했을 때, 협곡의 군데군데에서 쌓인 눈 위로 드러난 5연대 병사들의 소총과 얼굴만 비쭉 내민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소대원 모두에게 공포감이 젖어 들었다.
도쿠시마 대위는 군대의 위신을 생각하여 안내원들에게 반 협박성의 입단속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고 난 후 산 아래의 마을에 있는 수색부대에 시신을 보지 못했다는 보고와 함께 자기 연대로 말없이 귀환하게 된다. 행군에 참가한 소대원은 모두 건강한 상태였다.
행군훈련의 성공을 축하하는 거창한 행사도 못한 채 훈련은 끝난 것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행군에 참가했던 지방신문사의 종군기자가 세상에 사실을 알리게 되어 사회적 문제로 퍼져갔다. 이것이 백 년 전에 핫코타 산골짜기에서 일어났던 일본군 대형 조난사고의 진실인 것이다. 그런 이후에 치른 러일 전쟁은 일본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성격이 다르고 성장배경도 다른 두 명의 리더가 똑같은 목표를 향해 추진했던 모든 과정과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이끌어가야 많은 멤버들과 함께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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