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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운다>실패한 기업들의 공통점 /코닥

성공을 도와주기 2012. 6. 19. 13:24

 

     

<실패에서 배운다>실패한 기업들의 공통점 ‘F-A-I-L’

2012-06-15 10:30

 

 

100년, 아니 단 30년이라도 계속 성장하며 커온 기업이 얼마나 될까? 세계 톱 100 기업 가운데 실패 없이 성공가도만 달린 기업은 과연 있을까?

휴대폰 시장의 아성이었던 노키아가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인 ‘BB’를 받고 전세계 필름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코닥이 파산신청을 하고, 100년 기술기업의 자존심인 샤프마저 대만 훙하이(鴻海)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기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정말 ‘영원한 승자’는 없는 것일까. 그들은 왜 실패했을까. 만일 ‘실패의 DNA’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애플은, 삼성전자도 언젠가는 실패한 기업으로 전락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앞서 언급된 기업들이 영속기업이 못된 이유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음을 지적한다. 지나친 자신감도 쇠락의 주 요인으로 주목한다. 조직 간 시너지 결여와 무엇보다 트렌드 변화를 간과한 것을 패인으로 든다. 실패 기업의 원인 역시 ‘실패(F.A.I.L.)’라는 키워드에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다.

▶미래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다(Futureless)=미국의 자존심이라던 자동차 빅3(GMㆍ포드ㆍ크라이슬러). 그 가운데 특히 GM은 미래를 외면한 실패 사례다.

일본 메이커들이 유가 상승에 대비해 10여년 전 부터 첨단 친환경 모델을 속속 내놓을 때도, GM은 연비가 안좋은 주력 모델(스포츠유틸리티, 픽업트럭 등)에 연연하다 수익성을 포기해야만 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최근 “GM은 기술개발 안 하고, 기술이 필요하면 사브니 대우차니 해서 돈 없고 작은 기업 인수해 기술 빼다 쓰고 하다가 망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싼 소형 컴퓨터의 대명사로, 포춘이 ‘미국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라고 칭송했던 DEC(Digital Computer Corp).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올슨은 당시 태동하던 개인용 컴퓨터(PC)를 ‘장난감’이라고 폄훼했다. 그러다 PC업체인 컴팩에 경영권을 내줬다.

지나친 자신감(Arrogance)이 독=샤프는 다방면에서 ‘세계 최초’ 기록이 많다. 구멍 없는 버클도 창업자 하야카와 회장의 작품이다. 특히 액정표시장치(LCD)는 일본의 자존심이라고 불릴 만큼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런 자만심에 취한 나머지 자신이 만든 패널을 자사 평면 TV인 아쿠오스(AQUOS)에만 채택한, 기술적 폐쇄성과 오만이 문제였다. 공급업체가 적다 보니 경기 변동에 따라 매출이 요동쳤다. 수익성도 하락해 결국 2011년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3800억엔(약 5조3000억원)의 경악할 만한 적자를 기록했다. 창사이래 최악의 실적이었다.

반면 인텔의 앤디 그로브는 회의 때 마다 무조건 반대이론을 제기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집어넣어 자만심과 쏠림을 견제했다. 삼성전자와 전방위적으로 특허전쟁 중인 애플 역시 지금처럼 자사 기술에 대한 장벽을 쳐간다면 10년 후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시너지를 없애는 독립조직(Independent)=기업 내 조직문화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울수록 내부경쟁 덕분에 더 많은 수익을 낸다는 ‘신화’가 한 때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소니’가 좀처럼 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1994년에 도입한 ‘독립채산제’ 때문임은 아이러니다.

이윤을 독점하려는 사업부들의 이기주의(사일로 효과;Silos effect) 때문에 기술 공유가 힘들어졌고, 사업부 간 시너지도 없어 오히려 기술력만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독립채산제 때문에 소니는 애플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변화에 대한 간과ㆍ외면(Look-away) =1분기에 5조8000억원이라는 경이적인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 한 때 애플 때문에 글로벌 휴대폰 시장의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한 적이 있었으나 대규모 선제적 투자와 공격 마케팅으로 단번에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덕분이다.

반면 131년 역사의 코닥은 1975년에 일찌감치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고도 미국 내 필름 90%, 필름 카메라 85%라는 매력적인 점유율을 잠식당할까 봐 기술개발을 외면하다가 소니와 후지에 추월당해 결국 파산했다.

꿈의 직장 '코닥' 파산보호 신청까지 간 이유는?

“우리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무적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967년부터 ‘필름’의 대명사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에서 일했던 로버트 셰인브룩(64)씨는 “코닥에 다니는 것은 마치 지금의 애플·구글 직원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코닥에서 일하던 시절 점심때는 강당에 모여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감상하거나, 회사에 차려진 코트에서 농구를 했었다”고 말했다.

20세기 미국의 브랜드 아이콘이자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이었던 코닥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131년 전통의 코닥이 수주 안에 파산 보호(챕터11)를 신청할 것이라고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1만9000명 남짓인 코닥 직원들은 이제 길에 내몰릴 것을 걱정할 처지가 된 것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코닥은 파산 보호까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특허 포트폴리오 가운데 일부를 매각하고 있다. 코닥은 1100건에 달하는 특허권을 갖고 있다.

이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회사 정리절차를 진행하면서 은행권으로부터 10억달러를 조달한다는 계획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산까지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코닥은 JP모간체이스·씨티그룹·웰스파고 같은 대형 은행들과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코닥 주가는 5일(현지시각)까지 이틀간 뉴욕 증시에서 40% 가까이 떨어진 주당 0.42달러(약 500원)까지 주저앉았다.

코닥이 내리막길을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후지·아그파 같은 해외 경쟁자들이 필름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독보적이었던 점유율이 나뉘었고 이에 따라 실적도 악화됐다. 여기에 2003년부터 주력사업이던 필름에 대한 투자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사진을 개발해놓고도 이후 니콘·소니·캐논 같은 경쟁업체들에 밀린 점, 은퇴 직원들에게 엄청난 수준의 연금 지급을 지속하도록 하는 회사 강령이 있다는 점 등도 회사 경영 상태를 악화시켰다고 WSJ는 지적했다.

코닥이 회생하느냐는 채권자들이 회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프린트 사업을 계속 이어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지에 달렸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코닥은 전 세계 프린터 시장 점유율이 2.6%로 전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닥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래퍼티캐피탈의 마크 카우프만 애널리스트는 “코닥은 디지털 이미지와 관련된 기술을 수백건 보유하고 있는데다 디지털 카메라 사업도 갖고 있어 재기 가능성이 있다”며 “프린트 사업도 전 세계 매장 90%에 비치돼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마켓워치는 전했다.

 

★ 코닥의 파산이 주는교훈.. [4]

인간이 스스로 알고 있다고 인지하는 사실 중

 

80%는 진실과 다르다.

 

나에게 아무도 코닥은 일본회사라고 말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코닥은 일본회사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제 알게된 진실은..

 

코닥은 미국 회사라는 것이다..

 

전세계 필름 시장을 석권하며..100년이 넘는기간동안..부자였던 코닥이..

 

불과 20여년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뒤쳐져..파산하는걸 보면서..

 

이건희 정몽구 회장님의 선견지명과 뛰어난 판단력에..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읍다..

 

 

미국 코닥의 파산신청이 보여주는 교훈은?

 

사람이 현명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만은 않다. 중국소설에서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사람이 진정으로 교훈을 얻는 때는 추상적인 무엇인가를 생각해서가 아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거나 조직이 파멸할 때 가장 쉽게 교훈을 얻는다.

 

 



마치 코카콜라처럼 세계를 휘어잡은 필름회사가 있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알던 코닥이라는 회사다. 필름카메라만 있던 때, 이 회사는 무적처럼 보였다. 엄청난 매출과 독자적인 기술력, 세계적인 위상은 감히 견줄자가 없어보였다.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필름은 코닥 아니면 후지가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영광도 잠시뿐이었다. 

코닥은 다가온 디지털 사진 혁명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치명적인 위상하락을 맞았다. 그리고는 파산을 막기 위해 다른 회사에게 특허권 소송을 통해 돈을 뜯어내 회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 포스팅을 통해 교훈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급기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마침내 코닥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출처)

 

 

사진 및 영상장비 명가 이스트만 코닥이 최근 불거진 심각한 재정난과 경영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1월 19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이스트만 코닥이 미국 뉴욕 남부 맨해튼 법원에 파산 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1880년 조지 이스트만이 설립한 코닥은 롤필름과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회사로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 시장을 이끌어왔다. 코닥은 한때 지금의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꿈의 직장으로 불릴 정도로 지난 세기에 카메라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었다.

하지만 코닥은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 시장의 성공에 빠져 디지털 시대에 맞는 사업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4만명이 넘는 직원 수는 현재 1만9천여명에 불과하고 이들의 운명도 알 수 없게 됐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기존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지키기 위해 상용화하지 않은 것이 이 회사의 최대 실수로 평가되곤 한다. 일찍이 디지털 이미징 기술을 개발했던 터라 현재 1천100여개에 이르는 특허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코닥의 디지털 이미징 특허는 현재로서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이를 통해 애플, 삼성전자, HTC를 특허 소송으로 이기며 로열티 회사로 불리기도 했다.

코닥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2에서 디지털카메라 이지쉐어 M시리즈 신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도산 직전에 이르러 애플과 HTC, 삼성전자에 다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최고 자산인 특허로 파산만은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코닥의 파산보호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무엇일까? 이 회사가 실은 오히려 가장 앞서서 디지털 이미징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필름에서 쌓은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이른바 디카(디지털 카메라)도 장악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코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도 비슷한 경우가 있긴 하다. 석유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드는 업체가 미래의 동력으로 불리는 전기자동차 부문에서도 앞서 있다. 그렇지만 휘발유와 경유 자동차의 시장을 지키기 위해 그 실용화에 매우 조심스럽다. 여기에는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정유회사의 로비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배터리 기술이란 장벽이 아직 존재한다는 측면이 있다. 엄청난 속도로 기술장벽을 허물며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과는 약간 다르다.

미국 코닥의 파산신청이 보여주는 교훈은?

 

 



기술이 중요한 시장에서는 가장 앞선 강자라고 해도 한계가 뚜렷하다. 거대한 기술발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또한 대응을 게을리하면 강자 자리에서 순식간에 몰락한다. 그 어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기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시기에는 더욱 긴장해야 한다. 기존의 강자가 한꺼번에 몰락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티비와 음향기술의 강자였던 소니가 디지털시대에 대응을 못해 추락한  경우도 좋은 예다.

지금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분야가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그렇고, 전자잉크를 이용한 전자출판, 클라우드를 이용한 전자컨텐츠 시장 등이 그렇다. 이 시장에서도 돈과 실력을 갖춘 기존의 강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응이 느리면 한순간에 가라앉는다. 그 기회를 잘 살린 누군가가 강자의 위치에 오른다. 예외는 없다. 이것이 바로 코닥의 파산보호가 가져다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회사만은 안전하다. 혹은 내 회사만큼은 예외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자유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결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어차피 얻게 될 교훈이라면 조금이라도 덜 상처입었을 때 역사를 통해서 깨달았으면 한다. 그것이 세상을 좀더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다.